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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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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2. 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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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슈퍼마켓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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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너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아.'(p62)"
"아무래도 이 이야기들은 라나가 듣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p26)"

라나의 엄마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어떤 책을 읽어 주거나 읽힐 때 먼저 내용의 적절성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게 사실입니다. 예전에 수입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TV에서 큰 인기를 끌 때 학부형들은 그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산 컨텐츠가 외산을 거의 몰아내었을 뿐 아니라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아 해외에 수출까지 됩니다.

21세기인 지금, 유럽 근대에 창작된 여러 동화들이 과연 그 하나하나가 아이들한테 읽히기 적합한지는 따져 봐야 할 문제인데, 영국 코미디언 벤 밀러가 쓴 이 작품은 학부형으로서 한 번 정도는 느꼈음직한 저런 고민을 모티브로 삼아 이렇게 재미있는 판타지 하나로 탄생된 듯하네요. 역시 아동용 컨텐츠를 잘 쓰려면 아빠(엄마) 입장에 한 번은 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두에는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신 나(저자)의 아빠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표현(p4)되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어려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이들이 커서도 남 보기 좋게 크고 직장에서도 제 할 일을 잘 해 내게 마련이죠.

라나의 엄마도 정작 본인이 커서 읽어 보니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는 것 같은데 그림 형제 동화 중 난쟁이 룸펠슈틸츠헨 이야기는 우리들이 성인이 되어 읽어도 다소 기괴합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저 "룸펠슈틸츠헨"이라는 이름부터가 무섭습니다. 그 그로테스크한 난쟁이 캐릭터가 책 밖으로 나와 우리와 조우한다면? 책이건 영화, 드라마이건 이런 장르 판타지는 모두 어떤 결계를 넘어 내가 책 안으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책 안의 세계가 밖으로 우루루 튀어나옵니다. p43에서 라나는 마치 이상한 나라로 빨려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어떤 어두운 통로를 거쳐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데 이것도 아마 거의 모든 판타지 장르에서 애용하는 클리셰이겠습니다. "보름달이 뜬 날 결코 날지 않는 용(p75)"처럼 말입니다.

"'문은 어디로 사라진 거에요?' '사라지지 않았어. 닫혀 있을 뿐이지.'(p70)" 언제나 결계는 이런 식입니다. H G 웰즈의 <벽문>에서도 사람 환장할 만큼 문과 통로는 닫힘과 동시에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여튼 이 커다란 젤리통은 편하긴 합니다. 라나 말처럼, 엄마가 아무리 책을 숨겨도 라나는 언제든지 그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숨긴 책(노인이 놀라운 상술을 부려 팔아먹은)에는 미처 서술되지 않았으나 왕자한테도 그 나름의 내력이 있었고 이 왕국은 말만 왕국이지 매우 가난합니다. p78에 왕자가 창피하게도 나라 이름을 드라이츠마르크라고 알려 줍니다(p127도 참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서푼짜리(=dreigroschen) 오페라>는 들어봤어도 나라가 통째 이런 푼돈어치인 건 또 처음입니다. 이 왕자는 좀 바보인지 p96에서 라나나 해리슨 이름이 이상하다고 큭큭거립니다. 매사를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네요. 이래갖고 과연 공주를 구해낼까요?

이런 두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에서 추격 씬(p86)만큼 사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건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재미나게 묘사된 것 중 하나가, 더 이상 아이이길(=나와 놀아주길) 거부하고 어른 세계로 한 발 들이며 공부에 집중하는 형, 오빠, 누나 등에 대한 섭섭함인데 이건 책 맨처음에 나옵니다. 이러니까 동생 입장에서는 더 엄청난 놀잇감을 만들어 저 어른 흉내내는 오빠(형, 누나)를 다시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 작가는 중년 남성이면서도 그 심리를 잘 캐치한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서 소설은 헨젤과 그레텔까지 등장시키는 등 캐릭터들의 향연을 벌입니다. 하루아침에 땅 밑에서 솟아오른 큰 슈퍼마켓(p6)처럼 그 안에 없는 게 없습니다. 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주인공들과 함께 부담없는 모험을 즐긴 것 같아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