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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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영화 하면 대뜸 생각나는 장르가 서부극이었으며 이 서부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품, 아니 차라리 주인공이라 할 만한 존재가 바로 콜트 리볼버였습니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고기능 도구의 휴대가 영원한 로망인데 한국처럼 대부분이 병역의 의무를 지는데다 전역한 민간인이 일절 총기를 소지할 수 없게 한 나라에서는 비록 지나간 시대의 재현 허구 속에서일망정 허리춤에서 순식간에 꺼내들어 적수를 쓰러뜨리게 돕는 이 권총이라는 도구에다 대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뭐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저술한 짐 라센버거인데 저 유명한 콜트 권총을 발명한 샘 콜트의 일대기, 그리고 콜트의 발명이 세계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을 차분히 논고하는 내용입니다. 일류 저술가의 저작이 보통 그렇듯 논픽션이면서도 마치 소설을 읽듯 독자가 내러티브 안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술술 읽혀서 좋았습니다. 또 이미 잘 알려진 팩트 나열만 지루하게 이어가거나 느닷없는 당위론(위선, 독단) 전개 같은 게 전혀 없어서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엔지니어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듯, 샘 콜트도 그의 저 놀라운 발명을 그저 자신의 순수 오리지널리티에 의해서만 일궈낸 게 아니었습니다. p100을 보면 루벤 엘리스라는 발명가가 언급되는데 바로 이 사람이 (책에도 나오듯) 슬라이딩록 방식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죠.
리볼버의 본질은 발사 후 번거로운 재장전 과정을 생략한 채 연사(連射)가 가능한 총기라는 점입니다. 사거리나 화력은 장총에 비해 짧지만 간편한 휴대, 간단한 손가락 조작만으로 6연속 사격이 가능하다는 게 실질적으로 미국 서부 개척사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할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이 책에도 나오듯, 연발 방식은 경우에 따라 사격자 자신에게 오히려 위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중근세의 대포 역시 기술이 미비할 때는 발포 진영에 더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한 자해 흉기 노릇을 하기도 했죠.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점 중 하나는, 샘 콜트가 사업과 발명에 열정을 갖고 한창 뛰어다니던 시기가 10대 후반부터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그가 교제하거나 영감을 그에게 준 이들은 하나같이 업계에서 쟁쟁한 명성을 누린 유명인사였는데, 마치 잡스가 타인의 여러 신안(新案)이나 특허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아이템을 완성했듯, 샘 콜트 역시 뛰어난 타인의 창의를 잘 연결하는 데에 도가 튼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혁신의 본질은 정녕 연결에 있나 봅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개인이 정력적으로 활동해도 시운이 맞지 않으면 그에 대항할 방법은 없습니다. 개인이 어떻게 시장이라든가 체제에 맞서 싸우겠습니까. 샘 콜트 역시 1830년대에 미국 전역을 휩쓴 경기 침체에 임해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으나, 궁지에 몰려서는 역시 천재 특유의 적응성을 발휘하여 위기를 기회로 바꿔 가기 시작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황을 근원적으로 타개하는 방법은 화끈한(?) 전쟁밖에 없으며 사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뿌리뽑은 사건은 바로 2차대전이었습니다. 마틴 밴 뷰런 당시 대통령은 새로운 총기의 도입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샘 콜트는 바로 여기서 큰 기회를 잡으려 합니다.
책 전반부에도 자주 등장하듯 샘 콜트에게는 존과 제임스라는 형제가 있었으며 이들이 샘 콜트의 인생에서 수행한 여러 역할들도 개성적이고 뚜렷합니다. 현대 창업주 정주영씨에게 동생 세영, 인영 같은 이들이 있었던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여기 나온 존 콜트의 이야기를 보면, 출판 사업이란 참 예나 지금이나 엄청 리스크가 크다는 점 실감할 수 있네요. 새뮤얼의 네 살 위 형 존 콜트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좋지 못한 최후를 맞는다는 게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은 뭔가 기시감을 느끼게도 합니다.
이 책은 세계사에서 가장 큰 역동성을 지니고 발전했던 미국 19세기의 전반을, 한 탁월한 개인을 통해 조망할 수 있는 내용을 마치 일대기 소설처럼 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코널리우스 밴더빌트라든가 새뮤얼(이름이 같아요) 모스 같은 다른 인물들도 양념처럼, 아니 어쩌면 본 코스 메뉴처럼, 수시로 등장하여 역사 공부하는 재미와 보람까지를 느끼게 합니다. 안타까운 건 이런 위대한 인물이 지병(류머티즘)으로 고생하다 그 에너지를 잃어가는 과정이며, 영웅의 퇴장은 신화 서사의 전형적 플롯과도 같아 그 비장미를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