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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잔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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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이 소설에서 천한 사기장이라고 자주 불리는 도경입니다. 처음에는 그의 연인인 송연주도 주인공급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갈수록 비중이 줄어듭니다. 연주도 양반인 송수호의 딸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대행수 강헌에게 수양딸로 들여졌다가 탐욕스러운 동래 부사에게 춘향이처럼 욕을 보기 직전입니다. 도경은 p88에 나오듯 양반 도윤수의 아들이었으나 그저 흙 만지는 게 좋아서, 또 생모의 어떤 마음 아픈 사연이 생기는 바람에 집을 나와 "천한 사기장이"가 됩니다.
이 도경의 삶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난에 가득찬 지옥입니다. 재능이 뛰어나서 뭇 사람들의 질투를 사서인지 대체 한 순간도 편하게 살 날이 없습니다. 조선에서도 탐관오리한테 걸려서 말그대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 명나라에 끌려가서도 죽을 뻔하고, 일본에도 끌려가서 모진 고생을 합니다. 묘하게도 주인공은 천한 신분(일단 그렇다고 하죠)인 주제에 어느 나라에서나 그곳의 최고 권략자들을 직접 대면합니다. 명에서는 만력제, 왜국에서는 태합(타이코)라 불린 풍신수길, 그리고 조선에선 무려 ooo을 만납니다. ooo은 왕은 당시에 아니었지만 나중에 왕이 되는 귀한 신분이고 이 소설에서 아주 총명한 귀인으로 설정됩니다.
도경의 불구대천지원수는 요시다입니다. 석가모니에게 숙적 제바달다(데바닷타)가 있었듯이 이 요시다라는 놈은 도경이 가는 곳마다 괴롭히고 죽이려 듭니다. 마치 한국에게 일본이 있듯이...까지는 아닐까요? ㅎㅎ 여튼 요시다는 마치 악마와도 같이, 오로지 특정인에게 들러붙어 괴롭히는 게 자신의 삶의 목적인 것 같은 그런 악질입니다. 소설 끝날 때까지 안 죽는 건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동래 부사가 이 소설에 나오는 중 최고 악질 최종빌런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은 중반쯤에 큰 벌도 받지 않고 퇴장합니다. 이런 악질도 p180에서는 "목민관의 직분"을 거론하는데 참 기가 찰 뿐입니다. 물론 동래부사는 우리가 아는 그 동래부사 송상현은 아닙니다. 그분은 인격자이고 위인이니만치 당연 이런 악질이 아니고 p268에 새로 부임하는 동래부사로 구별되어 별개로 등장합니다. p274에는 주인공 도경의 부친 도윤수가 임란 즈음에 이조판서였다고 나옵니다. p241에서는 도경의 이름자가 경치 경(景)임이 새로 알려집니다.
p103에 처음 이름이 거론되는 유정은 우리가 아는 그 유정 스님이 맞습니다. p186에서 도경을 이끌고 처음으로 ooo을 만나는 장면이 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고, p353에서는 아예 쇄환사로 왜국에 온 사명대사라고 더 분명해집니다. p347에는 잠시 휴정(=서산대사) 스님도 언급되는데 "눈 덮인 길 걸어갈 때..." 운운하는 명언은 우리가 백범의 말로 잘 알지만 사실 이게 오리지널입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방법은 좀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은데 p193에 대중이 이미 전설화한 그의 삶을 요약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p193이면 겨우 소설 중간 정도인데 주인공이 겪어야 할 개고생은 오히려 그때부터가 제대로 남았을 시점입니다. 원래 신분도 귀한 몸이었던 도경은 오로지 그릇 만드는 예술혼과 사랑하는 여인인 송연주, 이 둘만 마음에 지니고 사는 사내입니다. p97, 명나라 천자 만력제 앞에서 그릇 제조의 기적인 요변을 만들어낼 때 "가마의 여신"이 거론되는데 p252에서 그 여신이 바로 송연주임이 분명히 고백됩니다. 고백이라는 건 이런 걸 놓고 고백이라고 하는 거죠.
과연 송연주와 도경은 맺어질 인연인가 아닌가? p282에는 "처음부터 안 될 인연"이란 말이 있고, p309 에는 "타인보다 못한 인연"이란 말이 나옵니다. 후자는 송연주-도경이 아니라 요시다와 아오이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요시다가 대놓고 흠모하던 여인이 아오이였고 이 아오이조차 도경에게 푹 빠졌으니 요시다놈이 미치는 것도 당연합니다. 참고로 이 요시다 놈은 자신의 어미를 죽인 원수도 잠시 잊을망정 도경이만큼은 목덜미를 물고 안 놓아 주니 이건 뭐...
이 소설에는 부산 사투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p136의 대낄이(=엄청나게), p155의 가가 가가(=걔가 그 사람인가), p162의 여어(=여기) 등입니다. 어려운 말도 있는데 매번 각주가 달려 설명을 해 주므로 독해에 방해가 안 됩니다. p72에는 欽限(흠한)이란 말이 나오는데(p384에도) 제 생각에는 주문서보다는 "기한"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p135에는 관족(觀族)이 나오는데 이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상의 속어로 관심o자의 준말인 관종은 들어 봤지만 말입니다. p47의 에계는 애걔이지 싶습니다. p239의 "용서할소"는 아마 "용서하소"이겠죠.
우리의 히로인인 송연주가 p138에서 탐관오리 동래 부사에게 하는 말 "對小人 不難於嚴 而難於不惡"은 원래 채근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p203에서 어기창 비밀을 빼돌리려 한 풍신수길의 탐욕에 격노하여 명에서 전쟁도 불사하리라는 대목은 의미심장한데 사실 임란이 도자기 전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p264에는 조선 막사발 하나에 머스킷 50정을 쳐 주겠다는 포도아 측의 제안 때문에 결국 임란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인데 조금은 과장이겠습니다. p205에서 후금 운운한 대목은 오류인데 물론 누르하치가 건주위 추장으로 활발한 모습이긴 했으나 대금이란 국호를 쓴 건 1616년으로서 임란 발발과 24년 차이가 납니다. 여진의 동향이 수상하여 왜가 그 틈을 탄 게 아니라 반대로 왜의 망동이 남긴 혼란상을 틈타 여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머스킷 50정에 막사발 1개... 왜 조선에서만 이처럼 좋은 토질이 가능한가. p330에는 그 이유를 이장평(한동안 숨어 있다가 비로소 등장)이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풍화선사 이평관(p102)의 아들입니다. 이 책 뒤표지에는 이도다완의 유래가 그림과 함께 설명되었는데 본문 p268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p379에는 센 리큐가 이걸 명명했다고 나옵니다. p285에 짧게, 센 리큐와 히사다가 어떻게 퇴장했는지가 설명됩니다. p45에 보성다완이 처음 언급되는데 p388에서는 고비끼라는 별칭으로 아주 중요하게 또 등장합니다.
이 소설에서 가슴이 설레던 대목은 p200에서 느닷 ooo이 등장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뤼팽물 <813>에 빌헬름 2세 카이저가 갑자기 나오는 장면과 비슷했습니다. p276에서는 ooo이 암호를 도경에게 남기는데 이 소설에서 또 멋진 대목이 ooo이 도경에게 ooo에다가 암호를 남기는 부분입니다. p223의 모사꾼은 우리가 아는 모사(謨事)꾼이 아니라 흉내낸다는 모사(模寫)입니다. 그만큼 예술가는 남의 흉내내는 걸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는 거죠. p134의 항거왜인도 抗拒가 아니라 恒居입니다.
p117에서 "허접한 양반의 껍데기"를 벗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다며 절규하는 도경은 p295에서 "이제 도경은 죽었소"라고 외치며 요시다(결말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납니다) 대한 복수의 의지를 불태웁니다. 앞에서 송연주더러 "양반 딸 연주는 죽었고 이제 천한 기생만 남았다"는 대사가 있는데 p395에서 심장으로 그릇을 만드는 장인이 "진정 천하다"는 말도 반어법이고 죽는다는 것도 반어법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