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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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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창시한 사람입니다. 현실 설명력에 여전히 많은 한계를 노출하지만 그래도 어느 사회과학보다 정밀한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이라는 도구에 크게 의존하고 신뢰를 보냅니다.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분야를 새로이 개척한 업적이라면, 그 주인공이 엄청난 창의력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타고난 개인의 재능 요소 외에, 이런 인물을 빚은 사회 경제적 특질은 무엇이 있었겠는지 이 책은 평전 형식을 통해 두루 분석합니다.
사실 당대인들에게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 외에도 여러 방면에 걸쳐 지도적 의견을 개진했고 그의 활동 근거지였던 스코틀랜드는 물론 영국, 타 유럽 국가에서도 널리 경청하는 국제적 인플루언서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탄생(1723)한지 올해로 300주년이라 하니, 인류사 다방면에 걸쳐 남겨진 그의 업적을 돌아보고 아울러 그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하였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집필도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저술했을 뿐더러 스코틀랜드(애덤 스미스와 동향)에서 저널리즘, 아카데미즘 통틀어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니콜라스 필립슨입니다. 다만 이분은 책날개에도 나오듯이 2018년에 타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등, 어찌보면 경제학과는 한참 동떨어진 분야의 저서를 써서 당대 지도층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 인물입니다. 당대 기준으로는 어쩌면 이쪽이 주력 활동 분야였다고 할 수도 있으며, 다만 사회구조적 조건이 크게 변한 오늘날에는 그리 큰 참고가 안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많이 잊혀졌을 뿐입니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에서는 장 러신(Jean-Baptiste Racine. 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 몰리에르, 코르네유 같은 희곡 작가들이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의 전성기를, 대략 애덤 스미스 탄생 반 세기 전에 활짝 열어젖혔는데 그 흔적이 <도덕감정론>에도 남아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마치 문학평론가처럼 등장인물 페드르의 동기를 분석하는데 이 작품은 라프 발로네, 앤서니 퍼킨스 등 주연으로 1962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러신을 "존경"했다고까지 말하는데(p107) 스코틀랜드의 오랜 친불(親佛. francophile) 감정을 고려하더라도 좀 별나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습니다.
언어학이라고 하면 지금 이 시대로부터 백 년 후에 활약했던 구조주의 사회학자 드 소쉬르라든가, 아직 살아 있는 노엄 촘스키 등을 떠올리겠지만 애덤 스미스 역시 그의 시대에는 언어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나폴레옹은 그 재능이 군사 한 분야에 치우쳤으므로 진정한 천재가 아니"라는 어느 전기작가의 평가를 읽은 적 있는데, 그 필자의 기준으로도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은 천재의 범주에 너끈히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처럼이나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으니 말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직 학문 각 분야의 발전이 미진했기에 이런 현상이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반대로 오늘날은 앞선 천재들이 다져 놓은 기반 위에서 활동할 수 있고 여러 첨단 기술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더 유리한 면도 있어서 결국 조건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위 <페드르>의 분석, 또 p156 이하에서 다뤄지는 언어학 논고에서 공통점을 끌어내는데, 그것은 인간 "욕망"에의 통찰입니다. 왜 인간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가? 그것은 무언가가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뭐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것이겠는데, 경제학의 대 전제가 "자원의 희소성과 그것에 대비되는 욕망의 무한성"임은 우리도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니 주제가 경제가 아닌 타 분야일 때에도 애덤 스미스의 어떤 경향성 같은 건 두드러진다는 게 저자의 의도이겠습니다.
계몽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새뮤얼 본 푸펜도르프(p76. 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 역시 애덤 스미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 역시 활동 시기가 애덤 스미스보다 백 년 정도 앞선 사람입니다. 왜 이렇게 이 시대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 도덕적 동기, 사회적 덕목의 분석에 골몰했을까. 이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서는 여타의 기술적 디테일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겠습니다.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무엇이 되듯, 기술적 지식이 발전해도 이를 쓰는 사람의 의도가 악하면 모두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현대인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를 포기하고 각자의 취향에 맡기기로 결론내었는데, 그 규칙을 무시하고 여전히 독선에 빠진 사람, 이를 악용하는 사람 등 위험천만한 폭탄을 끌어안고 가는 셈입니다. 사회계약설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흄은 애덤 스미스보다 열 살 정도 위라서 거의 동시대인으로 봐도 되는데 p143 이하에 그들의 관계가 잘 서술되어서 흥미롭습니다. p170, p201, p254, p297, p368도 참조하십시오. 흄이 하도 자주 나와서 전기의 공동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이 책 저자도 스코틀랜드 출생이고 캠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딴 분인데(책의 소개란에는 그 말이 안 나왔습니다만), 애덤 스미스도 스코틀랜드 사람이면서 옥스포드에서 수학(修學) 기간을 거친 이력이 서로 닮은 데가 좀 있습니다. 큰 업적을 남긴 학자들의 젊은 시절을 살피면 아 이분도 이렇게 혈기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놀랄 때가 있는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인적 동군연합 단계를 넘어 물적으로 통합(real union)이 된 게 1707년이었습니다(p123, p360 참조). p96 이하를 보면 17세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떠나 옥스퍼드로 온 청년(요즘 같으면 어린애 나이입니다만)이 어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는지 그 편린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이런 분들이 흔히 택했던 커리어 중 하나가 귀족 자제의 개인교습을 밀착하여 담당하고 이런저런 혜택을 받는 것이었는데 이른바 그랑투어에의 동행, 지도였습니다. 아일랜드 부호였던 셸번 백작의 아들 토머스 피츠모리스(이름에서도 아일랜드인임을 알 수 있죠)에 대해 그는 이 소년이 이튼 재학 중 무리 없이 법학이나 라틴어 수업을 받을 수 있게 성의껏 지도했으며 특히 경비 지출에 오해가 없도록 세심히 정리된 보고서를 (친구인데도) 그 부친에게 제출했다고 나옵니다.
p215를 보면 "그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동시대인의 지적 욕구도 충족해 주면서 적절한 개혁성도 노출했고 교수법도 뛰어나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넘어 마치 팝스타처럼 열광과 지지를 받은 듯하여 흥미롭습니다. 애덤 스미스 하면 <국부론>이 조건반사처럼 떠오를 만한데 그는 이 책 저술과 부대활동을 통해 특히 프랑스의 루소주의자들(p241), 또 케네(p336)와 대립했습니다. 케네는 중농주의 정책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고 사실 이 사람이 한 걸음만 더 디뎠으면 아마 경제학 창시자 타이틀도 자기 몫이었을 겁니다. 애덤 스미스와 자유무역 옹호라는 점에서 닮기도 했지만 이 책에 잘 나오듯 경제정책 포인트 곳곳에서 대립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생애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냉철한 이성으로 해답을 제시한, 현명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진정 똑똑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삶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여자문제를 비롯, 사생활도 깔끔하게 관리한, 오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욱 비범했던 그의 선견지명을 일깨우는 작품" - 뉴욕타임스. 이 책 뒤표지에서 재인용.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