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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①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 허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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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6. 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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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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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삼국연의. 혹은 경우에 따라 정사 삼국지)>뿐 아니라 어떤 책을 읽는다 해도, 그 책의 배경이 된 여러 사정, 역사적 맥락, 지리적 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이해가 어렵습니다. 웬만큼 삼국지를 잘 알고 즐겨 읽는다 해도 현지 여건(=작품 배경)이 충분히 감안되지 않는 독서는 수박 겉핥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여러 제약 때문에 독자가 직접 현지를 찾지 못한다면, 대가의 답사기를 읽고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솔직히 말해, 일개 독자가 설령 현지 답사를 한들 뭘 알겠습니까.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가 한 땀 한 땀 디뎌 보고 통찰한 후 멋진 사진과 함께 남긴 알찬 기록을 따라가는 게 훨씬 효율적인 활동이며 저자의 가르침까지 동시에 취득하는 더 좋은 선택이죠.


현재와 과거는 수학의 직선 그래프와는 달리 칼로 무 자르듯 뚝딱 구분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차원 곡면처럼 둘이 서로 붙고 공유하고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라서 천 수백 년 전의 과거가 현재 중에 갑자기 돌출되기도 합니다. p61에서 저자는 산서성 운성 상평촌, 즉 관우 탄생지를 찾아, 대체 사람인지 신선인지 알 수 없었던 어느 초인, 충의의 화신이 남긴 족적을 훑습니다. 이 유적도 마오의 문화대혁명 당시 철저히 파괴될 뻔했던 걸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지켜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돈 따위로는 평가할 수도 없는 그 소중한 역사 유물을 어쩌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그렇게 쉽게 파괴할 마음을 먹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할 뿐입니다.

여웅을 죽이고 해지를 지나쳐 탁주에서 유비, 장비를 만나게 된 건 운명이었다고 저자는 말씀하시는데 책에 나오는 대로 이 대목은 나관중본이 아니라 <삼국지평화>에 나오죠. 이처럼 삼국지 유니버스를 놓고, 다양한 출전을 넘나들며 짚으시기 때문에 독서가 더욱 행복해집니다. p121에 나오듯 나관중은 관우와 천 수백 년의 간격을 둔 고향 후배이기도 하죠. 위진남북조 사백년 전체의 맥락에 통달하신 저자의 거침없는 설명을 듣고 나면 저간의 의문이 해소되어 막힌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합니다.  

벌써 그때부터 남성 중심 사회였기에 천한 궁녀 출신이라도 황후가 될 수 있던 시절이고 무능한 하진이 전횡을 시도하려다 십상시에 죽으며 원소가 다시 이들을 처단합니다. 사실 <연의>만 읽으면 이 과정에서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하고 어떻게 바로 동탁이 대두하여 그토록 오래 설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좀 안 되긴 합니다. 아니 원소가 이 시점에서 바로 실력자가 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저자는 낙양성의 첫인상에 대해 "평범 그 자체"라고 합니다. 중국의 여느 중소도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중국 당국이 (마치 한국에서 경주, 부여 등을 관리하듯) 고도로서의 케어를 살뜰하게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 도시로서 개발을 제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조상의 현명함을 빼닮지 못한 불초(不肖)한 후손들이라 하겠습니다. 낙양은 동아시아인들에게 장안과 함께 "서울"과 같은 보통명사인데도 말입니다. 


호뢰관 전투의 진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적 고찰을 시도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엉뚱하게도 손견의 공이라는 거죠. 다만 연의에서 주인공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호걸의 출발점을 초라하지 않게 세팅하려는 나관중의 위대한 예술혼 발로라고 저자는 짚습니다. 멋진 역사소설에는 허구와 윤색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런 게 소설가가 역사왜곡을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혹시 이런 방향으로 실제 역사가 전개되었더라면 얼마나 멋졌고 얼마나 정의로웠을까 하는 창조주의 선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조조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 모르나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특유의 잔인하고 제멋대로인 기질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천하가 나를 배신하게 하기보다 내가 천하를..." 이 말이 참 너무도 유명한데, 이 말만큼 조조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구절도 없을 듯합니다. 저자 말씀대로 "천하를 배신할 수 있는 건 조조뿐"입니다. 안휘성 박주는 조조뿐 아니라 그가 그렇게나 불신했던 화타도 배출한 곳이니 아이러니컬합니다.


아름다운 여성 때문에 오랜 우의에 금이 가고 조직의 질서와 기강이 무너지는 건 흔히 보는 일입니다. 저자께서 잘 설명해 주시듯 초선은 실존인물이 아니며 그녀가 맡았던 직책을 이름으로 만들어 캐릭터화한 것입니다. p153에 나오듯 원곡(元曲)에서는 초선이 여포의 아내이며 동탁 진영을 초토화하기 위한 일종의 마타하리 포지션인데 나관중이 이 캐릭터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비련의 여인으로 승화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삼국연의 독자들은 마음 속에 그녀를 불멸의 순정녀처럼 간직하게 되었죠. 저자께서 목지촌을 실제 답사하고 남긴 소회, 또 사진들이 정말 볼만합니다. 

관도대전 후 중원의 형세는 조조 쪽에 크게 기우는데 이런 전투가 있고 나서도 원씨 집안은 여전히 강성했습니다. 원희의 처 견부인을 사로잡아 조비가 취했을 만큼 치욕적으로 패배한 결과였는데도 본거지에서 여전히 세도를 휘두르며 조조 진영을 긴장시켰습니다. 조조 역시 무리한 싸움을 걸지 않고 이후에 상대측이 자멸할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준현, 활현 일대를 들르며 저자는 참으로 복잡다기한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왜 어느 영웅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가지고도 이를 살리지 못하며, 어느 영웅은 불리한 형세를 뒤집고 가망 없던 일을 해내고야 마는가. 답은 하늘만이 알 것입니다.


판형이 크고 폰트는 작은 편이라 텍스트의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진이, 아름답고 구도 완벽한 사진, 사진, 사진들이 이렇게나 많이 실렸으니... 삼국지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책입니다. 가슴이 벅찰 정도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