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2: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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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혹은 프랑스, 독일 출판계에서는 셰익스피어다 괴테다 하는 대문호의 걸작에다가 컴패니언이라고 해서 관련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정리해 둔 아주 두꺼운 책들을 펴냅니다. 거기에는 원 텍스트에 대한 주석, 해설도 들어 있고, 배경이 된 지역의 현재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있고, 고전 팬들을 위한 갖가지 배려와 교육적 컨텐츠들을 베풀어 두곤 하죠. 이 책은 물론 주된 성격이 기행문이지만, 저자의 풍부한 학식과 통찰을 함께 담아 낸 책이므로 "삼국지 컴패니언"이라 불려 부족함이 없습니다.
허창은 조조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 지정학적 요충지였습니다. 저자는 이곳 근처에 소재한 마등의 묘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습니다. 마등은 불운하게 죽은 인물인데 조조 역시 최소한의 정의감은 있었는지 간악한 배신자 묘택과, 문제의 불씨가 되었던 이춘향을 동시에 처형했습니다. 저자는 마등의 실제 행적은 삼국연의와 크게 다름을 지적하며 나관중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짚습니다.
또 유장의 협량을 진즉에 간파하고 익주를 바치려 한 장송에 대해 어이없게도 냉대한 조조, 그를 놓고 저자는 적절한 비평을 가합니다. 순전히 외모가 못생겨서 의도가 좌절된 장송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불쌍하고 한편으로 우습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겉모습만으로 그리되었을까, 뭔가 말투, 매너, 소통 방식, 성품 등에 두루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그 실질에 무관하게, 첫 만남에서부터 뭔가 남한테 불쾌감을 확 안기는 유형은 분명 있습니다). 아들 조비도 이상할 만큼 외모지상주의자이긴 했지만 천하의 조조가 중요한 이슈에 대한 판단을 아무려면 그렇게 가볍게 내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유비는 변변한 물적 기반 없이도 덕망으로 혹은 행운으로 영지를 척척 잘 얻었던 행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조조가 기를 쓰고 온갖 책략을 다 쓰며 세상으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먹어가며 땅을 넓힌 과정과 대비됩니다. 저자는 익주 획득의 중요 고비가 되었던 가맹관을 찾으며 심회에 젖습니다. 저자께서는 이전에도 이곳을 찾으신 적 있었는지 그간 발전한 흔적에 감탄합니다. 근처에는 방통사가 있는데 龐統祠라고 쓰죠(방통은 우리가 잘 아는, 봉추와 복룡 할 때 그 인물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천성, 성도(成都)를 찾으면 이 코스, 즉 방통사, 백마관, 소화고성 등을 정해진 방법대로 방문하는가 봅니다. 당국에서 잘 개발해 놓았겠지요.
장비는 그 뛰어난 무용, 강렬한 성격적 개성, 그리고 너무도 허무한 최후 때문에 많은 이들의 뇌리에 살아 있는 인물입니다. 낭중고성은 장비의 사당인 한환후사가 소재한 곳인데, 한(漢)은 유비가 국호를 한으로 삼아서 그렇고, 환후는 장비에게 내려진 시호입니다. p125를 보면 적만루의 사진이 실렸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장비의 기상이 서렸다"고 평가합니다. 건축 양식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으셨다는 뜻인지, 아니면 단지 장비가 묻힌 곳이라서 그리 말씀하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호북성의 형주는 천하의 요충지이다... 양양은 천하의 등뼈와 같은 곳으로...(p190)." 그래서 촉 조정이 관우 같은 핵심 인물을 보내 방위를 맡긴 것인데 과연 7년 동안 철벽과 같이 지켜졌습니다. 위와 오도 이 구도를 깨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비상한 수단을 써서 간신히 격파했고, 연의에서 조조는 관후의 죽음을 두고 각별한 소감을 피력하는데 작품 전체를 통해 조조가 관우에 대해 품은 존중과 애정은 일관적으로 표현되지요.
p234를 보면 주변 풍광과의 조화는 고려하지도 않고 무작정 크게, 눈에 띄게 화려하게만 짓는 풍조에 대해 저자는 신랄히 비판합니다. 형주성의 관우상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은 미디어를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적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제작한 삼국연의 드라마물을 보면 배우들의 어색하고 과장된 연기, 복식 등의 지나친 화려함 때문에 고전에 대한 외경심마저 싹 사라지곤 하는데, 아무리 조상들이 위대하면 뭐하겠습니까. 후손들이 변변치 못한데.
1권에서 원소의 세력을 대파하고 원희의 처 견씨를 조비가 취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는데 이 2권 p294를 보면 문제가 그 견씨를 자결케 한 기사가 인용됩니다. 이는 정사이고, 연의에서는 또 연의답게 그럴싸한(혹은 궁중비사 클리셰스러운) 이야기를 지어내어 작품 안에 꽂아넣죠. 저자는 여기에 <한진춘추>의 기술까지 덧붙여 과연 무엇이 진실일지 함께 생각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제안합니다.
p340에는 명월협이 소개됩니다. 사진상으로만 봐도 경치가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지리도 범상치 않습니다. 중국 교통사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물론 천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풍수의 세가 일정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그 근본의 구조, 모양새가 바뀌진 않습니다. 언제든 이곳이 교통상 요충지가 아닐 때가 있었겠습니까. 삼국의 쟁패 과정에서 오간 그 치열한 속임수와 책략, 한편으로 신의와 충절의 발현 등은 역시 시대를 초월하여 유효했고 또 감동적입니다.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삼국 사가(saga)의 심오한 교훈과 표출되는 격정도 아마 영원히 독자의 정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