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열자는 노자의 손제자 격으로, 도가의 큰 맥을 이은 공적이 크며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사상 색채를 덧붙여 이 사상의 거대한 집에 풍성한 미를 가중한 인물입니다. 도가 사상을 논함에 있어 열자를 빼놓고서야 그 정확한 계보를 논할 수 없고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없습니다. 중국 학계의 최신 동향을 언제나 자신의 저서에 반영하여 한국 독자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던 고 신동준 박사의 번역입니다. 신 박사의 번역서가 언제나 그렇듯 한자 원문이 함께 실렸습니다.
고서 중에는 과연 누구의 저작인지 명확지 않은 책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p74의 黃帝書의 경우 이름이 저렇게 되어 있으니 그 전설상의 황제가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존성을 크게 믿을 수 없죠. 黃帝帛書, 黃帝四經(더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에 대해 청대 고증학자 惠棟은 그 저자가 老子라고 비정했습니다(같은 페이지 역주). 신 박사는 그 근거에 대해 예로부터 노자 사상의 동의어 중 하나가 "황로학"이었음을 듭니다. 다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저자 명의를 바로 추단하기란 좀 무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혜동은 황종희 고염무 등이 다진 고증학 초창기 2세대쯤 되는 학자입니다.
노장사상 중 특히 열자의 학문만을 따로 떼어 열학(列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연, 이세민이 당 통일 제국을 만든 후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노자가 추숭되었는데, 열학도 따로 존중된 이유는 이분의 학문 세계가 특히 현실 정치에 응용될 여지가 많아서라고 합니다. 신 박사는 노장 사상이 내내 유학과 쌍벽을 이뤘으나 한번도 유가를 압도하지 못한 이유로 曺魏 시대의 왕필(王弼)이 지나치게 장학(莊學)의 관점에서 도덕경을 해석한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왕필 이후로 도가 사상은 치평을 위한 면모는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 양생(養生)을 위한 현실도피, 은둔자의 사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게 신 박사의 견해입니다. 다시 말해, 도가가 노장 사상이 아니라 노열 사상이 되었더라면 중국 역사는 유-도 양가의 팽팽한 긴장 하에 사상적으로 더욱 풍성한 기반을 갖고 다채롭게 발전했으리라는 결론도 도출 가능합니다.
열자는 노자를 직접 사사하지 못했으니 과연 사상의 진수를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기록에 의하면 관윤자(關尹子. p108의 역주에 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 나옴)라고도 하고, 같은 鄭나라 사람인 호구자림(壺丘子林. 특히 이 책 p73 같은 곳. p105에만 호구자립이라고 오타 있음. p127도 참조)이라고도 합니다. 관윤자는 책 이름이기도 하고 저자인 윤희를 높여 부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예 관윤자를 천 수백 년 후 오대 시절의 위서로 보는 입장까지 있지만 노자, 열자에 대해서는 그 실존성이 의심받지는 않는 게 보통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열자의 경우 생전 인정을 못 받고 거의 평생을 포의로 떠돌던 인물임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예전에 윤재근 한양대 교수가 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가 큰 인기를 끈 적 있는데 <장자> 원전 자체가 재미있는 우화로 가득한 경전이기도 하지만 내용 중에 사정없이 공자를 조롱하는 대목들이 많아 아마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껴서인 이유도 있겠습니다. p85를 보면 신 박사는 "열자는 장자와 달리 공자를 희화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역시 현실정치를 고민했던 입장에서 마냥 유가에 경멸적 시선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겠습니다. p126에서 신 박사는 "열자가 이 대목에서 사실상 공자를 도가의 인물로 보고 있다"고 단정합니다.
p93에는 그 유명한 기우(杞憂)의 유래가 나오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바보스러움을 비웃고자 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황류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명쾌한 논파를 열자가 결론부에서 가하고 있는 데에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신 박사는 나아가 과연 그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 근거 없는 걱정인지도 한번 현대물리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분석해 보자고 합니다. p124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 학습지에서 읽었던 해상지인과 갈매기의 이야기가 나오네요. p142에는 조삼모사의 고사가 등장하니 다른 건 몰라도 이 대목이 그 고사의 원전이라는 점 명심하여 읽어 볼 만합니다.
주관적 관념론자 조지 버클리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의 논변으로 유명합니다. 이 책 p77을 보면 "성자(聲者)는 외물에 의해 소리를 내기에 귀에 들리지만 성성자(聲聲者)는 일찍이 소리를 낸 적이 없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한자는 아마도 虛일 것입니다. 이는 無와는 다르다고 역자 신 박사는 강조하며, 사물과 자연의 본성에 따라 억지스럽거나 무엇에 부딪힘 없이 일을 현실 속에서 무난히, 근본을 응시하며 추진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취지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