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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독일/프로이센 역사 -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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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7. 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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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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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은 본디 유럽의 먼 변방에서 가난하게 움츠리다, 호엔촐레른 방계 어느 변경백 가문의 알브레히트 대에 이르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독일어로 hohe(n)이 "높다"는 뜻이며, Zollern은 책 p16에 나오듯 지명에서 유래했습니다. 책에서도 말하듯이 기원 자체는 합스부르크만큼 오래된 가문이지만, (합스부르크와는 대조적으로) 한미하게 보낸 수백 년 세월이 너무 길었으니 감히 빈(Wien)의 카이저 혈통 앞에 명함을 내밀 주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 통일 독일의 맹주는 바로 이 가문이 차지했으니, 합스부르크가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껍데기, 허명(虛名)에 집착할 때(p28 참조), 이 가문은 격이 떨어진다는 평이 나올 만큼 실리와 금력을 부지런히 축적하는 데에 주력한 덕분이 컸습니다. 게다가 중세 튜튼 기사단(p42 참조)에 하나의 거대한 뿌리를 둘 만큼 나라 자체가 상무(尙武)적 기풍을 내내 유지했기에, 결정적 순간에 강건한 군사력으로 역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역사 공부할 때 가장 왕의 이름 익히기 어려운(p46 참조) 나라가 바로 프로이센입니다. 무슨 족보가 할아버지도 프리드리히, 아빠도 아들도 프리드리히인가 하면, 빌헬름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심지어 두 이름을 합친 프리드리히 빌헬름도 있습니다. 마치 로마 교황들 중에 요한이 있고 바오로가 있으며 요한 바오로가 따로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 호엔촐레른 가문과 무관한(독일 서남부 슈바벤이라는 지역적 기원은 같습니다), 수백 년 전 호엔슈타우펜 가문에도 프리드리히 대제가 있었기 때문에 혼란은 더합니다. p37에 나오듯이, 프로이센은 공국 시절 세는 대수(代數)와, 왕국으로 승격된 후 세는 대수가 다르며, 나중에는 독일 제국 황제로서의 대수가 따로 있기까지 합니다.

18세기 초 프리드리히 1세 치세부터 프로이센은 국운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조피 샤를로테가 그 모후인)는 왕으로서의 체신도 돌보지 않고 아랫사람들이나 하는 실무지식을 익히고 자랑스러워 하는가 하면, 영토 내를 순시하다 게으름을 피우는 국민들을 보면 일일이 몽둥이로 구타하며 생산 활동에 복귀할 것을 독촉했다고 합니다. 이백 년 후 독일 제국의 3대 황제인 망국 군주 빌헬름 2세도 이런 스타일이었다고 하니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뭐 모든 것은 결과로 판단 받기 마련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대착오적 광신도였던 카트린 드 메데시스가 프랑스에서 신교 탄압책을 펴자 상공업의 주도 세력이었던 위그노 교도들이 대거 프로이센으로 이주했습니다. 마치 레콩키스타 이후 모리스코를 핍박하여 스페인이 제 산업 기반을 스스로 붕괴시킨 것과 비슷합니다.  프랑스가 마치 국가 정신인 양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톨레랑스를 저 무렵에는 사정없이 내팽개치고, 엉뚱하게도 후진국 프로이센이 그 기치를 대신 올린 셈입니다. 이때부터 독일 특유의 건실한 상공업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가를 부강, 풍요로 이끄는 건 종교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보내며 자신과 사회를 위해 땀흘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임을 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책에서는 p49에 콘스탄틴 크레티우스의 그림 <위그노들을 맞이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를 소개하는데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참으로 의미심장한 기록화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대왕(p76, p86. der Große)으로 널리 칭송받으며 특히 군사적 수완이 뛰어났다고 평가받습니다만 이른바 브란덴부르크의 기적 사건(p87~88)처럼 파멸 직전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일도 많았습니다. p74에는 그의 경력 초기 몰비츠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자가 여기에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결부시킨 건 기발한 서술입니다.

할머니인 조피 샤를로테도 수학자 라이프니츠를 초빙, 후원하여 미분법 발전이라는 업적을 남기게 도왔듯, 프리드리히 대왕도 지식인들(볼테르 등)을 우대하여 계몽군주라는 명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어용지식인의 대표격인 15세기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에 대해 대단히 경멸하는 논조로 책 한 권을 쓰기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위선자였을 수도 있고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 같은 군주는 세상 천지에 저런 원수가 없다고 여겼겠으나(p90 등) 여튼 인물은 인물이라서 그런 행운도 따랐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p81에 나오는 동판화는 이상하게도 책에 설명이 없는데 피에르 샤를 바쿠아의 작품입니다.

이 책에는 유독 폰 멘첼의 웅장하고 섬세한 그림들이 곳곳에 수록되었는데 사실 호엔촐레른 가문의 역사 하면 또 이 사람의 손끝에서 그 위대한 순간이 포착된 게 많기도 합니다. 또 프로이센의 영광은 인접 폴란드의 쇠망과 궤를 같이하는데 이 책만 해도 그 시작을 위대한 폴란드가 어떻게 알브레히트의 신종을 받아내었는지로 잡았고(p21), 그 절정을 1차 폴란드 분할(p93), 2차 분할(p109)에서 포착합니다. 분할은 말 그대로 프로이센 혼자 한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함께 한 것인데, 오스트리아나 프로이센이나 과거 강성한 폴란드에 크게 신세 진 일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건 뭐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1세라는 거대한 산을 넘은 후 국력 신장의 탄탄대로를 걷고 19세기 중반 비스마르크라는 명재상을 맞아 마침내 제2제국의 꿈을 이루는데 책에서는 그를 프로이센 사상 최대 스타(p158)라고 표현합니다. 이 책에는 프란츠 폰 렌바흐의 많은 그림들을 소개하며 비스마르크의 풍모를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덴마크, 오스트리아를 차례로 꺾은 프로이센 앞에 유일하게 남은 장애물은 프랑스였는데 당시 이 나라는 나폴레옹 3세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프로이센 왕실이지만 그 승승장구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을 담은 p176의 그림, 또 외제니 황후를 묘사한 p179의 회화를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한 점의 아이러니를 선사하네요. 둘 다 독일 화가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의 작품들입니다.

프랑스는 1871년 무참하게 몰트케 원수의 군대 앞에 무너졌지만 1918년 기어이 복수에 성공하여 알사스 로렌을 되찾고 호엔촐레른 가문을 권좌에서 퇴장시킵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가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