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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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와 함께 엄청난 사치 행각과 화제성 있는 언동으로 20세기 초 미국 사교계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사람의 운수가 길하거나 불길하게 흐르는 게 참으로 무상하게 돌아갈 뿐인 듯합니다. 한때 좋은 사업운을 만나 벼락출세를 한 개츠비, 하지만 비천한 과거를 숨길 방법은 없고 어설픈 사칭 연극을 벌이는데, 극중 상류층 인사 눈에는 물론 심지어 독자한테도 그 얕은 술수가 빤히 보입니다. 고가 아이템 목록을 줄줄 꿰는 건 어디서 주워 듣고 흉내내는 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배움이 얕은 건 차마 위장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 쓰는 개츠비에 대해 경멸감이나 분노가 솟기보다, 왠지 측은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게 또 보통의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머틀 읠슨의 동생 캐서린의 외양을 묘사한 p57의 여러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머틀(Myrtle)도 돈 많은 남자들한테 꼬리나 치다가 팔자나 고치려는 유형이고 캐서린도 다를 바 하나 없습니다. 눈썹을 다 뽑아 버리고 새로운 자리에 문신을 해 넣었지만 "원 위치를 찾아가려는 자연의 노력 때문에 얼굴이 지저분해 보였다"는 게 작품 속의 서술(1인칭의 닉 캐러웨이 목소리)입니다. 21세기 한국의 특정 부류 여성들 역시, 이 문장이 비꼬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시술은 원래 유지 비용이 더 들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닉 캐러웨이는 탄탄한 환경에서 자란 인물답게 제법 냉철하고 절제력도 강한 인물입니다. p56을 보면 그는 평생 두 번밖에 술에 취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닉의 사촌 데이지 뷰캐넌도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온 축복받은 인생이지만, 성격이 가식적이고 내면이 텅 비었습니다. p35를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라는 그녀의 말을 두고 "억지로 지어낸 쾌활한 목소리"라 평가를 받는 대목이 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코멘트는 형식상 1인칭 화자인 닉 캐러웨이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슷한 출신 배경을 지닌 사촌 눈에도 이런 인간적 허점과 내면의 부실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이지. 그 백지장처럼 얇디얇은 인격의 깊이란.
p109를 보면 닉과 개츠비의 세번째 만남이 서술됩니다. 개츠비의 많이 못 배운 입에서 (이 작품 전체를 통해) 버릇처럼 나오는 말이 "형씨"인데, 원어로는 old sport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이 작품을 원서로 읽을 때에도 대체 저 말이 무슨 느낌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제가 더 이해가 안 갔던 건, 이런 저렴한 말씨를 쓰면서도 자신의 배경이 위장 가능하다고 여전히 믿는 개츠비의 대책없는 낙천성입니다. 두 페이지 넘기면(p111) 개츠비가 자신이 옥스포드 졸업자라고 밝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수작에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사실 이 유명한 대목에서 제가 더 이해가 안 갔던 건, 가짜를 한눈에 알아 볼 만한 위치에 있는 닉 캐러웨이 같은 사람이, 구태여 조던 베이커가 뭐라고 단정했었느니 어쩌니 하며 남의 생각에 근거를 두는 기색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조던 베이커가 무슨 판단을 갖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본인이 직접 보면 모른다는 말입니까? 저는 이 대목에서, 닉의 내면이 개츠비에 대한 동정, 혹은 공감으로 가득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두를 꼽자면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 하디의 <테스>와 바로 이 작품이 거론되는데, 거기서 닉이 괜히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말을 회상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개츠비가 불쌍해 죽겠다는 소리죠. 20여년 뒤에 나온 로버트 워런의 소설 <올 더 킹스 맨>에서 젊은 기자 버든이 타락해가는 윌리 스탁을 졸졸 따라다니는 심리와 약간 비슷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가지만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이런 얄팍한 술수가 오래갈 리 없고 운수가 다한(여태 버틴 게 용한) 개츠비는 이제 파멸이 지근거리에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아니 이것도 닉이 알려줘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닉은 개츠비에게 애틀랜틱시티 등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는데 책의 각주(p245)에도 나오듯 뉴저지에 있죠. 영화 <대부 3>(1990)의 헬기 무차별 충격 씬에서도 나오듯 카지노로 유명한 곳입니다. p63에도 몬테카를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앞으로 계속 나올 세계문학 시리즈 둘째 권입니다. 어렸을 때 참 잘 안 읽히던 작품이었는데 왜 이리 술술 읽히는지 그동안 나의 내공이 늘었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번역자가 김석희씨인 걸 다 읽고 나서 확인했습니다. 어쩐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