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41449696619
테라리움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1976년작 영화 <플라스틱 버블의 소년>을 보면 선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린 어린이가 평생을 인큐베이터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사연이 나옵니다. 활동 반경이 지극히 제한되다 보니 그 답답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의 건전한 발달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까지 있지만 애가 워낙 착하다 보니 자신의 답답함보다는 부모님의 수고를 먼저 생각하느라고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사람이란 본래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태어난 만큼 그 자유가 구속당할 때 마치 죽음이 임박한 듯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숨쉬는 공기, 섭취하는 양분마저 오염된 상황이라면 꼭 그 피해를 신체적으로 겪지 않더라도, 나뿐 아니라 세상 자체가 종말에 처했다는 근원적 절망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p15에는 바이오스피어, 즉 폐쇄순환생태계라는 개념이 처음 나옵니다. 우리 지구가 인간이라는 한 개체에게는 너무도 큰 공간이지만, 대기권을 벗어나면 숨도 쉴 수 없어 대사작용을 못 하고 우주공간에서 방사능에 노출되어 바로 죽게 되니, 지구 자체가 하나의 바이오스피어입니다. 이제 아포칼립스를 거쳐 지옥이 된 지구 곳곳에서 대피소로 구축된 위생공간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실감하게 된 지구의 안온했던 환경이야말로 사실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폐쇄 테라리움은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지구 자체가 어머니 가이아의 선물이었던 줄 어리석고 사악한 인간들은 너무도 늦게 깨달았습니다.
일기장은 누군가의 내면과 지난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역사책입니다. 소년은 누군가가 컴퓨터에 남긴 기록을 엿보는데, 세이렌이라는 프로그램의 힘을 입은 것입니다. 경기도, 코리아 같은 행정구역명은 (아직은 종말이 닥치지 않았지만 전망이 암울한) 책 밖의 세계 독자에게도 친숙함과 반가움을 전하는 이름들입니다. "개판이 되긴 했지만 난 아직 조국을 사랑한답니다!(p61)" 공감을 부르는 냉소적인 절규입니다. 개판이 되어도, 응원하던 야구팀과 날 낳아 준 나라는 죽을 때까지 사랑할 뿐 어떤 세탁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산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이해하는 척을 할 뿐이다.(p74)" 자연이 공급하는 깨끗한 산소와 음식으로 생존한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그것이 박탈되어 봐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대변하는 "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은 삶을 이해할 수 없고, 지옥에서는 천국을 그저 불완전한 상상력으로 동경할 뿐입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TTS가 합성한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감쪽 같다고 생각했었으나, 자꾸 듣다 보니 역시 사람의 육성대에서 빚지 않은 인공은 티가 날 수밖에 없더군요. 소년은 로봇의 제지와 경계도 통과하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직후 어떤 살아있는 중년 여인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감각, 센서는 참 탁월한 점이 있어서, 생체만의 미묘한 특징을 잘도 포착하며 그 고유의 징후에 대해 스스로 감탄하기까지 합니다. 소년은 이 순간 벅찬 감동까지 느끼며 전율합니다.
"우린 괜찮아. 이리 와(p127)." 어느새 소년은 개와 완전한 팀이 되었으며 벌써 "우리"라는 1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세계가 망한 지 오래되었으나 소년도 기린, 코끼리 같은 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압니다. 생체를 많이 접해 봤어야, (앞에서 말한 대로)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는데) 산 척 흉내만 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있겠는데, 여튼 소년은 내면의 강한 갈망 때문인지 젤라틴 덩이 같은 걸 보고도 저게 생물이겠거니 짐작을 합니다.
p134에서 드디어 소년은 헨리에타를 만납니다. 하지만 대답은 왠지 시큰둥하거나 미온적입니다. "그런 셈이죠." 바라고 바라던 그 존재이지만 실체는 열망이 빚은 기대에 언제나 못 미치는 걸까요? 환경은 주체를 만들고 주체가 환경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파멸이 닥쳐 오는 게 분명한데 왜 인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지... 누군가가, 아마도 우리들의 어어니가, 호된 훈육으로 깨우칠 때가 되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