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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정글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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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시에서의 치열한 삶을 정글에 비유합니다. 농촌과 달리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과도 일을 위해 어울려야 하며, 수시로 다른 상대들과 경쟁해서 성과를 내야 하고, 레이스에서 이겼다면(예:발주 받은 프로젝트 성공) 큰 포상을 받고 그렇지 못했다면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하는... 그런데 개인 수준에서도 도시의 삶은 큰 도전이요 정글에서의 생존 경쟁에 비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거시적으로 봐도 애초에 도시 자체가 정글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게 발전해 왔다는 게 저자 벤 읠슨의 결론입니다. 한동안 전작 <메트로폴리스>가 주었던 엄청난 감동을 잊었던 독자라면, 이제 이 후속작을 마저 읽고 과연 우리 인류 문명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중인지 한 번 정도 점검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루이스 워스(Louis Wirth)를 인용(p11)합니다. 워스의 저 말이 꼭 아니라도, 서양 문명은 대체로 자연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고 가끔 재해 같은 시련을 부과하는 사악한 존재입니다. villain(빌런. 악당) 같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거친 자연에 그대로 순응하여 사는 사람은 거칠고 못났다고 여겼습니다(villain의 어원이 촌락이라는 village의 그것과 같음). 영어에서 토목공학을 civil engineering이라 하는데, 멀리 로마 제국 시대 이래 저들 서양인에게는, 자연을 극복하고 인위적 시설을 얼마나 많이, 알차게 짓느냐가 문명인(civilian)의 척도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런 서양식의 전통적인 태도와 관점에 이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DC코믹스의 배트맨 캐릭터 연관 컨텐츠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뉴욕은 곧잘 고담(Gotham. 가썸) 시티에 비유됩니다. 본디 고담은 바보들만 산다고 여겨지는 설화 상의 농촌이었지만 뉴욕은 그렇기는커녕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메트로폴리스입니다. 베트맨 시리즈가 구태여 고담 시를 배경으로 삼은 건 똑똑한 줄 알지만 사실은 가장 바보들만 모여 산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깔린 건데(반대로, 설화의 고담은 바보인 척 했던 똑똑이들의 마을이죠), p25에 언급된 테드 스타인버그도 그의 대표 저서에서 사실 그 말을 하려던 것입니다. 아직 저 책은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근세에만 하더라도 겨울에 연료를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도시 근방에 숲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생태 공간과 생명들이 공존하는 도시와 그 근교(서브어반. suburban)의 묘사는 심지어 독일 문호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에도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은, "개발하려는 의지" 때문에 그저 황폐하게만 보이는 건물 대단지의 행진 덕에 밀리고 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게 벤 윌슨뿐 아니라 이 책에 인용된 상당수 저자들의 입장입니다. 한국 지방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멀쩡히 있던 야산이나 녹지를 개발(?)하여 돈 되는 아파트 단지를 잔뜩 세우는 게 비일비재한데, 과연 도시의 먼 장래를 고려할 때 이게 토지 소유주 외 누구의 이익이겠는지 깊은 고려를 할 필요가 있겠죠.
p63을 보면 2003년에 헨더슨 부부라는 이들이 LA에서 도시환경법규 위반으로 소환되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특히 중요한 사람들이라서 책에까지 나온 게 아니라, 우리도 왜 미국에서는 자기 집 앞마당 잔디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관청에서 제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봤을 텐데 그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저자는 인위적이고 때로 반(反)자연적이기까지 한 미국 메트로폴리스 시민들이 지향하는 정책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맹성을 촉구하려는 의도에서 해당 사례를 간략하게 소개한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부부가 살던 구역 이름은 론데일인데 그 어원이 잔디 계곡이라는 뜻(p63의 각주에도 나옵니다)이니 말입니다(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게 왜 불법이냐는 소리. 물론 시민은 행정법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미국 등 각국의 잔디 관리에 대한 도시 정책이 어떤지는 p100에도 자세히 나옵니다.
우리도 온갖 건물이 들어선 도시 한복판에 민들레나 각종 잡초들이 자라는 좀 신기한 모습을 보곤 합니다. 뭐 다들 예사로 봐 넘깁니다만 제 눈에는 신기하던데(다음에 블로그에 사진 찍어 올리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아무리 인간들이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칠갑을 한 반생명적 공간으로 왜곡시킨 현대의 도시라고 해도, 놀라운 생명력으로 기어이 적응하고 마는 몇몇 생명체에 대해 소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p126). 미래에는 이처럼 도시의 삭막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은 몇몇 종만 번성할 것이라는 저자의 다소 암울한 전망도 나옵니다. 다만, "식물의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식물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걸 알게 될 것이다." 같은 문장도 있긴 합니다(p156). 이 대목에서도 역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잘 드러납니다. 이런 책을 쓰려면 확실히 모르는 게 없어야 하나 봅니다.
현재도 환경 관련 운동은 진보진영 연관 단체에서 주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런 사정은 그 연혁이 깊습니다. p204를 보면 베를린의 숲 등 자연을 보호하는 운동이 이미 20세기 초에, 그것도 프로이센 황실이 강경한 태세를 취하던 독일에서 뜻 있는 운동가들이 벌였던 사례가 소개됩니다. "베를린 노동자 계급이 생각할 때 그뤼네발트는 그들의 것이었다(p205)." 그뤼네발트가 벌써 푸른 숲이란 뜻이니 말입니다. 비록 베를린이 제국의 수도라고 해도 어느 나라나 수도는 진보 성향 시민들이 많이 살기 마련입니다. 현대의 미국 DC만 해도 민주당 득표율이 80% 후반을 훌쩍 넘깁니다.
한국의 서해안에도 광범위하게 습지가 분포되었지만 특히 최근 3,40년 들어 세계적으로 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이미 1960년대에 뉴욕 오크우드에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며 그렇게나 많은 습지가 사라졌건만 21세기인 지금 이 지구는 그 많던 주택도 없어진 채 그저 황폐해졌으니 시민들은 온전히 습지만 잃은 셈입니다. p233에 인용된 Sergius Polevoy라는 사람은 앞서 언급된 테드 스타인버그의 책에도 등장하는 활동가입니다. 물론 타계한지 반 세기가 이미 지났습니다.
심지어 칼 마르크스도 이미 <자본론>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선순환이 자본주의 때문에 비로소 파괴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p269). 빅토르 위고도 도시의 거대한 배설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 개탄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배후에는 식량 공급지가 반드시 자리하는 게 지난 수천 년의 상식이었는데 이 확고했던 연계협력이 깨어진 건 정말 최근일 뿐이라고 저자는 개탄합니다(p273).
사실 지나친 개간 때문에 과거 한때 번성했던 도시가 폐허로 바뀐 건 그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피폐함"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그 대안으로 도시에서는 최근 Z-Farming이 유행한다는데(p289), 대륙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진 실태로 보아 생명은 확실히 어떤 통일된 기획 같은 게 없어도 알아서 제 갈 길을 찾아나가는가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옥상에 할머니들이 상추를 재배하는 것도 이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얀트리는 삭막한 도시 속에서 짧은 낭만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습니다. 버려지거나 관리 안 된 도시를, 몬순 기후 지역에서 정글이 집어삼키는 예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캄보디아의 앙코르라고 책에서 소개합니다. 이 책에서 정글은 참 여러 의미로, 때로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쓰이는데, 자연을 정복했다고 여기는(착각하는?) 인간은 때로 오만하게 만능인 양 활개치지만 자연 앞에서는 사실 아직도 무력합니다. 반얀트리는 책 곳곳에서 어떤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도시는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만 그 생명력이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애써 가꾼 도시라는 인문환경을 길이 번성하게 하려면 자연을 적대하는 게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순응해야 합니다. 전작인 <메트로폴리스>가 인문지리학 지평에서 지난 3천년의 도시 역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친환경 생태학의 스텐스입니다. 전작도 한번 같이 읽어보는 걸 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