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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주옥 같은 문학 고전을 읽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 운동장에는 라스콜니코프, 싱클레어, 베르터, 아드리안 레버퀸, 안나 카레니나, 달타냥 등이 뛰놀며, 척박하고 비열한 심성이 채 자리할 틈을 주지 않고 잔디를 가꿉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지평선 너머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해도 하늘 높이 뜬 달이 천 갈래로 흐르는 강의 표면을 일일이 아름답게 비춰 줍니다. "웃고 울고, 상상하고 공감하(이 책 앞표지)"게 하는 문학의 힘은 이처럼 놀랍습니다.
영국 문학의 비조로 꼽히는 제프리 초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약간은 비(非)영어적입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도 우리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들어 본 고전입니다. 이 책 p48에 나온 대로, 그의 본성(本姓)은 드 초서(de Chausseur)이며 이는 프랑스어로 제화공을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조상이 제화공이었든 뭐든 간에 그의 집안은 왕실과 연결되는 좋은 기회를 잘 잡아 성공했고, 제프리 초서의 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쪽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큰 부를 일궜으며, 그에 따른 자유로운 향락의 삶이 작품에 잘 배어납니다. 사실 초서뿐 아니라 초창기 고전 문학에는 말초적 쾌락에 대한 우아한(때로는 노골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뒤 p225도 참조하십시오).
셰익스피어는 어떤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문학사를 쓰든 반드시 한 챕터를 차지해야 하는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풍기는 게, 시적인 운율이라는 건 번역을 일단 거치면 그 상당수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다른 언어의 옷을 걸쳐도 그 특유의 박력과 아름다움, 기발함을 여전히 풍깁니다. 책에도 서술되듯이 그의 작품은 "결코 쉽지 않고 편안하지도 않지만 그 위대함의 일부가 그런 점으로부터 나온다(p74)"는 사실 역시 놀랍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새로 들어선 스튜어트 왕조가 국력을 기울여 완성한 영역본이며 그 이전에도 영어 번역은 간간이 있었으나 이처럼 내용이 정확하고(당시 기준) 최고의 두뇌들이 한곳에 모여 정력을 기울인 역작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종교적 권위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든가 풍성한 비유와 상징(원전 자체의 힘에도 기댄) 덕분에 영문학사에서는 그 의의를 결코 가볍게 둘 수 없는 이정표요, 어느 시대에도 문학적 영감의 원천 노릇을 했습니다. "책 중의 책"이라는 저자의 평가는, 그리스어 비블리아(바이블의 어원)가 원래 "책"이란 뜻이었다는 사실을 떠나서도 지극히 타당합니다.
구 민사소송법 용어 중에 "채무명의"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 말은 전형적인 일본식 번역어로서 말만 들었을 때에는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집행권원"이라는, 겉과 속이 보다 일치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 p106(제11장 中)을 보면, 영국에서 출판사가 저작권(판권)을 가진 작품 하나하나를 title이라 불렀다고 하는데(물론 지금도 같습니다), 이 타이틀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권리"를 뜻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왜 집행권원의 독일어 원어가 Schuldtitel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영미법계와 대륙법계가 생각만큼 그리 선명한 대조만 서로 형성하는 영역이 아닐뿐더러, 이런 몇몇 용례는 그 근원이 프랑스법이고, 후진국이었던 영국과 독일이 각각의 방법으로 다른 시기에 이를 계수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힘든 곳이며, 역경은 (결국) 개인이 헤쳐나가야 한다. 개인주의는 소설 문학의 핵심 요소가 된다. 그래서 소설 제목에는 개인의 이름이 든 예가 많다. 사일러스 마너, 톰 존스의 일대기, 에마...(p119)" 역으로 생각하면, 소설에 개인주의가 덜 깃들면 제목에 개인(캐릭터)의 이름이 떡하니 들어가는 경우가 적어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예로 들지는 않았으나 가장 극적인 케이스로는 <로빈슨 크루소>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국 문학처럼, 사람 이름만 떡하니 제목으로 내세우는 관습이 파다한 나라가 없지 싶습니다. 테스(p228), 주드 디 옵스큐어, 올리버 트위스트...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렵네요.
제15장에는 "낭만주의 혁명가"들이 소개되는데 바이런 경, 월터 스콧, 존 키츠, 윌리엄 워즈워스, (이 장에는 언급이 없으나) 예이츠 등이 그 대표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낭만주의자들은 다른 나라처럼 그렇게 대책없이 낭만으로만 치닫거나, 현실의 쓰디쓴 모순에 대해 외면,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완강한 족쇄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시니컬하게 인식하는 태도를 작품 속에서 자주 드러내곤 하죠. 대신 이 "혁명가"들은 말보다 행동을 통해 보여 주는 바가 많았습니다.
제20장에서는 문학과 어린이에 대해 다루는데 앞에서도 말한 워즈워스의 공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됩니다.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유명한 구절을 그의 시 <Ode>에서 읊은 바 있고, 이 점은 책 p189에서 저자가 직접적으로, 또 자세히 분석합니다. 사실 문학사를 개관하며 저자가 따로 어린이 문학, 혹은 문학에서 어린이가 특히 주제로 부각된 대목을, 따로 챕터 하나를 할애하여 짚는 예는 좀 드물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학은 어렵든 쉽든 유년 시절에 충분히 향유할 필요가 있으며, 성인이 되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자, 괴물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의 주제 중 하나가 "불멸하는 문학"인데, 세상에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으려면 후속 세대가 계속 건전한 유산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계관시인 하면 대뜸 떠오르는 사람이 앨프리드 테니슨 경인데 p212에 나오는 <경기병대의 돌격>이 유명하고 이 작은 20세기 중반에 들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반전 패러디물이긴 하나). 공적이냐 시적이냐, 둘 중 시인은 어떤 미덕을 택해야 하느냐에 대해 저자는 동시대의 제라드 홉킨스를 그와 대비시켜 독자에게 고민해 볼 것을 권합니다. "변절"이라는 단어도 쓰이는데 아마 한국 같으면 "어용"이라는 단어도 등장했을 법합니다.
히틀러 같은 이들은 무척 불만이 많았으나 1차 대전 후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브레히트 같은 작가의 활약에서 알 수 있듯 검열로부터 대단히 자유로웠습니다. 반면 밀(JS Mill)의 <자유론>이라든가 더 예전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 등이 발표(p235)되어 애독되었던 영국은 의외로 엄숙주의가 오래 지배했기에 예을 들어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검열의 지옥이었을 러시아에서 체홉 같은 이가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해서도 책은 짚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고독, 살만 루슈디의 신성모독, 귄터 그라스의 휴머니즘과 고발정신, 폴 오스터와 제임스 밸러드, 로렌스 스턴의 트릭(기법)은 우리 삶의 이면을 엿보게 돕는지혜를 제공합니다. 20세기 들어 새로 등장한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이런 비전은 새로운 통로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문학은 인류가 호모 루덴스로 남는 한 영원히 그 핵심 도구로서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