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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개정판) - 마르크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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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10. 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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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은 실로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정신을 소프트웨어화하여 그 사람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안드로이드에 담아 일주일 간만 유가족과 함께 지내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력을 지닌 회사의 대주주가 안토니 왈슈 씨이며, 그의 딸이 줄리아입니다. 줄리아는 사십이 안 된, 아직 어느 백작부인보다 더 옷태가 사는(p333) 여성인 듯합니다.

왜 하필 일주일일까요? 유가족이 영원히, 배터리를 갈아 가며 그 안드로이드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하면 더 좋을 텐데. 안토니 왈슈 씨에 의하면 윤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줄리아에게는 어느날,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빼닮은 인형(안드로이드) 하나가 배달되어 옵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하필이면 줄리아가 아담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 그날 돌아가셔서 장례식에도 참여하고 온 터입니다. 줄리아는 이십 년 가까이 아빠와 의절하고 살았는데, 성격 차이 외에 토마스 메이어라는 남자와 얽힌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임이 소설 중반 이후에 밝혀집니다.


생전에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남은 엿새 동안 나누고 오해를 푸는 일은 분명 뚯깊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마치 맞춤형으로 이런 놀라운 기술이 발명되었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덜컥 믿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정말 순진한 사람임이 틀림 없습니다. 소설 후반부에서 약혼남 아담은 끝내 그 사유, 핑계(?)를 믿지 않습니다.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니라 아담은 그새 더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린 거죠.

음 여튼, 아버지와 딸은 원래 신혼여행 코스였던 퀘벡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토마스와의 그 일(무엇인지는 아직 안 나옵니다) 아니라도 부녀는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이 말다툼이 소설 읽는 재미 중 큰 포인트입니다. 예를 들면, p114에서 "제가 제안을 받아들일 걸 어떻게 알고..?"라며 미리 비행기표 이름 정정을 다 마친 아빠를 반어법으로 비꼬는 대사가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도, 아무리 감쪽같이 만들었다지만 안드로이드를 사람들이 그렇게나 못 알아볼까 의문이 들 만하죠,


사실 여기까지 읽고도 뭔가 큰 ....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면 그 독자는 미시즈, 아니 미스 줄리아 왈슈만큼이나 아주 순진한 사람이겠습니다. 작가 마르크 레비는 반전을 숨겨 놓았다기보다, 거의 노골적으로 단서를 주며 이 ...에서 진상을 모르는 사람은 오직 줄리아뿐이라며 킥킥대는 중인데 말입니다. 소설 속에 제시된 힌트 몇 개만 여기 적어 보자면, p90의 "프로그램에 오류라도..",  p139와 p144의 "무릎 관절 지적 대목, p263의 주치의가 아직 모른다는 소리(말이 안되죠), p150에서 비서 왈라스(왈라슈라고 오타 났습니다)가 들킨 대목, p277의 "이 모든 게 계획..." 운운하는 대목, p295의 프로그램 덕분에 15개 언어 가능(웃음이 터집니다), p316의 기계 사용법을 모른다는 소리, p372의 "독어는 못 읽으신다고 했는데"라는 대사, p187의 기술상의 작은 오류라는 땀 등 많습니다 ㅋㅋ


아빠는 계속 딸과 화해하려 드는데 딸은 밀어냅니다. 그만큼 상처가 커서인데, p101에서 아빠가 "그냥 꺼버리려고"라고 하는 대목은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p185의 "지난 주에 죽은 게 잘한 일"이라든가, p442의 "그날을 택해 돌아가신" 같은 대목은 우스우면서도 슬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날짜를 고를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안토니 왈슈 씨 같은 특별한(?) 분은 다를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p117에서 "인간 대 인간의 조언"이라고 하는 데서 왈슈 씨의 부성애가 드러납니다.

시대상도 여러 군데에서 드러납니다. 일단 토마스 메이어와의 인연도 구 동독(공산주의)의 체제가 배경이 되었던 것이며, p161의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 연설(케네디의) 같은 게 그것입니다(연설 자체는 줄리아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지만). p123, p364에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공항이 언급됩니다. p359의 한스 디트리슈라는 호적계 직원은 왠지 구 서독 외무장관(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에도 재임)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이 2008년작이라서인지 아직 남자 승무원을 스튜어드라고 부르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2023년 기준, 아직도 프랑스에서는 미국처럼 승무원에 대해 성 평등이 철저히 적용된 호칭을 쓰고 있지는 않긴 합니다(소설 배경은 미국이지만, 이 소설 원작은 불어로 쓰였습니다). p267을 보면 안토니 선생이 "국경이 없어서 좋다"고도 하는데, 그새 생겐 협약이 체결된 사정을 반영합니다. p285, p435에서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왈슈 씨가 좋아하는)가 두 번 언급됩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결국 만나야 하며 그게 아빠의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있을 때 잘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