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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 소년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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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인데 왜 수를 놓는다는 걸까, 수를 잘 놓기는 할까, 이런 의문은 소설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금세 풀립니다. 그는 장돌뱅이(p92)와 어느 침모의 아들이었고, 아픈 누나를 대신해 수를 놓으며 엄마를 돕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나 봅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있었고, 고달픈 현실을 잊으려 예술혼을 불태운(?)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p47을 보면 누나도 솜씨가 좋았다고 하네요). p36을 보면 심양 시장 선전(線廛)에서 형형색색으로 진열된 실을 보며 "이 정도면 못 놓을 수가 없겠다"며 영감에 젖는 윤승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마치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선 책을읽고싶은소년과도 비슷합니다.
p8에서 심양이 청나라의 수도라는 걸 보니 아직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가 봅니다. 윤승이 끌려간 계기였던 병자호란(1636년)이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을 막는 예방 전쟁 격이었던 점(저 뒤인 p168)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p28에도 아직 대륙의 명이 망하지 않았음이 나옵니다. p18을 보면 윤승은 안주(p205) 출신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평안도 안주인가 봅니다(안주-박천 평야라고 할 때의). 윤승도 노예 상인에게 값을 치르고 환속될 수 있었으나 양반들이 이미 몸값을 너무 올려 놓아(p69) 상민, 천민들은 도저히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나라님이라면서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고..(p77)" 피로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릅니다.
잔인한 감독관 부카(그런데, p194에 반전이 있네요)한테 매를 맞아가며 노동을 하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통에, 어떤 작은 여자아이가 매를 맞아 죽을 위기에 놓인 걸 보고 윤승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기회를 잡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역경에 몰려도 이처럼 사람다움을 잃지 않아야 기사회생의 행운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진 부인이 윤승에게 p28에서 "힘든 처지에서도 만주어까지 배워 가며 생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칭찬해 줍니다. 아직 어린 윤승이 더럽고 한심한 노파의 음욕에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 여인네들이 노예로 만주에 많이 끌려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진 남성들의 첩 신세로 떨어졌는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남성의 성노예로 사는 것도 딱하지만 정실 여진 처의 질시와 학대까지 받아야 했다는 게 너무나 비참했죠. 오죽했으면 청 황제가 조선 첩실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특명까지 내렸겠습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진씨 부인도 태 부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쌍한 처지입니다. 아 물론, p42에 나오듯이 생짜 노예보다는 진 부인의 처지가 훨씬 나은 건 사실이죠.
심양 일개 장시(場市)에서도 눈에 띄는(p44) 금사(錦絲)가 왜, 조선에서는 왕실에서나 겨우 쓸 정도로 귀했을까요? 조선은 애초에 고려가 특수 계층 사치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 하에, 철저한 억상(抑商) 정책을 펴서 정치적 안정까지 도모했습니다. 민간에서 대자본이 형성되면 그걸 빌미로 권력 사냥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관료층의 청빈을 유도하는 효과는 다소 거두었으나 대신 국력 자체가 쇠퇴하여 결국 외침에 매우 취약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19세기에는 명목상의 국가 간판만 간신히 내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무렵의 청나라 역시 만주만 간신히 차지한 상황에서 관민의 사치를 금하던 통에, 윤승이 금사를 지닌 걸 보고 도 어멈이 한바탕 난리를 칩니다. 태 부인의 자비와 현명함을 기대했으나 이 노인은 아주 나쁜 흉계를 꾸미는 데 윤승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 윤승의 운명은 갈수록 악화일로입니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태 부인의 매질에 못이겨 윤승이 진 부인에게 불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윤승의 은인인 진 부인이 억울하게 신세를 망침은 물론, 결국 윤승도 후환을 우려한 태 부인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선인은 하늘이 돕는다고, 처음에는 강 대인이 현명한 처결을 했고(ooo마마도 성이 강씨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서로 아무 관계 없습니다. 강 대인은 여진족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ooo이 (사정을 몰랐겠지만) 그를 도우시는 바람에 기어이 진 부인과도 반갑게 해후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현세자 일가를 인질로 잡아간 청은 의외로 그들을 후대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적절히 잘 구사했다 할까, 장기적으로는 조선과 진정어린 유대를 맺고 보다 덜 비용이 드는 평화를 굳히려 했던 그들의 행보를 보면 단수가 참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p178에는, 청나라 관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p201에서는 명나라 황실에 부패한 관리도 있다고 합니다). p91을 보면 ooo과 진 부인도 이런 판세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oooo와 ooo 마마가 심양에서 지내는 동안 뛰어난 상업 수완을 발휘(p125)했다는 기록은 정사(正史)에도 나옵니다. 역시 ooo 마마는 판단력이 영민하셔서 의주 부윤에게 기별을 넣는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 듭니다(p142). 멋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바느질 장인인 서 사부는 윤승에게 화두 하나를 던져 줍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평생 남의 도구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p119, p167)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듣고 윤승은 또 깊은 반성을 합니다만, 독자인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어린 윤승이 의식을 했건 못 했건 간에 그는 인간의 양심을 언제나 잃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순간순간 잔머리를 굴리려 들었다면 훨씬 힘 센 사람들이 그의 속셈을 알아채고 이용만 해 먹은 후 벌써 폐기처분했을 것입니다. 그가 원칙대로 살았고 자신에게 잘해준 이들의 은혜를 잊지 않았기에 여기까지나 올 수라도 있었죠. 아마 그는 강을 건너 자신의 길을 바르게 잘 헤쳐나갈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