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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제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2023 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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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11. 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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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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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사뮈엘 핀처의 형 파스칼이 범인일지 모른다고 한 이지도르의 추론을 두고 저는 천재적이라고 했는데, 그 결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착상 자체가 기발하다는 뜻이었습니다. 1권 끝에서 큰 위기에 처한 뤼크레스가 이 2권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디프블루가 범인일지 모른다"고 하는 걸 보고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1권 후반부 접어들면, 눈치 빠른 독자는 과연 범인이 누구였고 어떤 과정을 통했는지에 대해 대충은 감을 잡게 됩니다. 아마도 그 범인은 1권 어딘가쯤에서 강력한 동기를 얻었겠고 심지어 복선도 마련되었더랬습니다. p12에 나오는 "폰(pawn)"이란 단어는 동아시아식 장기에서라면 "졸(卒)"이겠는데, 사건의 진상에 대해 중요한 암시를 던져주네요.



"꿈꾸는 능력을 갖지 못한 이상 컴퓨터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참 그럴싸한 말입니다. 인간은 꿈꾸기를 통해 현재의 한계를 초극하려 듭니다. 이 장편 1권이라든가, 다른 작품 안에서 베르베르는 언제나 대항해 시대 인간의 위대한 모험(2권이라면 p100, p103 같은 곳)에 대해 진정한 혁신 의지라며 극구 찬양해 왔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그 경계를 감히 범해 보려는 인간의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야말로 오늘의 번영을 일군 원동력이고 발판이었습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고 축적(p14)의 제국을 건설한다 해도 이는 하나의 평면적 확장일 뿐 도약이나 진화가 못 됩니다. 인간을 꿈꾸게 하지 못하는 스탈린식 압제야말로 창의력과 발전 가능성, 그 외 일체의 인간다움을 말살하려 드는 악의 총체라 하겠습니다.  

1권에서 ooo이 그토록 극한의 상태에 놓인 후 오히려 이게 지식을 쌓는 데에 유리한 상태임을 깨닫고 냉철하게 진화하는 장면이 놀라웠는데, 이 2권 p19에서 그는 더욱 신중하고 전략적인 태도로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에서 옥석을 가려가며 넥스트레벨로 퀀텀점프합니다. 책에서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진짜와 가짜를 가린다고 나오지만, ooo은 지금 육신으로부터의 공연한 자극과 충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므로 그럴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예전에 저는 IT 칼럼니스트 곽동수씨가 쓴 어느 월간지 칼럼에서 정보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게 더 힘든 과제가 되리라는 예언을 읽고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이제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에 살면서 예언의 위력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이 <뇌>가 처음 발표된 시기와 곽 선생의 그 칼럼이 쓰인 시점이 서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1권에 여러 차례 언급되었듯 ooo은 원래 어느 저축은행에 근무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의 (과거) 직분 중 "축적"이라는 단어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육신이 있어야 고통도 느껴지는 법인데 p31에 나오듯 블라디미르 부콥스키처럼 어느 공간으로 도피해 버리면 그 누구도 그에게 고문을 가할 수 없습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윌리엄 골드먼의 <The Bride Princess>에도 나오고 제가 2015년 3월에 쓴 어느 리뷰에서도 언급했더랬습니다. p37에 나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체르니엔코 박사는 구 소련의 어느 공산당서기장 이름과도 같습니다. 



동기, 동기... 이 역시 꿈꾸는 존재에게만 의미 있습니다. p146에 나오듯, 의지나 동기가 사라진 상태라면 인류 문명이라는 것도 사라지며, 궁극의 쾌락을 뇌 특정 지점 통제를 통해 좌우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어떤 향상을 위한 의지는 사라집니다. 이게 바로 l'ultime secret입니다(p151에 나오는, o감 중o의 제거 등). 2권 p106에서는 동기를 두고  "공화국의 국가(國歌)"라고도 표현합니다. 1권에서 뤼크레스는 이지도르와 함께 7개의 동기를 정리했고 1권 후반부에 잠시 이름이 나오는 초기 기독교 교부 중 한 명인 오리게네스(오리헤네스)는 7개의 죄악(칠죄종)을 규정한 바 있습니다(2권 p89에 또 나오네요). 데이비드 핀처(이 작에서 사뮈엘과 파스칼 형제의 성씨이기도 한)의 1995년작 영화 <세븐>도 이에 모티브를 두죠. 이 2권에서는 여덟째, 아홉째 동기가 언급되는데 애무에 대해서는 1권 후반부에 로마 시대의 풍습이 어떠했다면서 잠시 설명된 적 있습니다(2권에서라면 p199. 아마도 조 다마토의 영화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육신이 사고로 증발해 버린 ooo에게는 이미 아무런 동기가 되지 못하겠습니다.



1권에서 뤼크레스는 폴아웃(fallout) 상의에 대한 공포를 토로한 적 있는데, 이 2권 p31에서 다시, 출생시 머리가 산도에 끼어 큰 고통을 받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권 후반부에도 뤼크레스는 약간 독특한 무술을 익혀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쓰는 재미있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 2권 p49에도 위축되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실력을 잘 발휘하여 위기를 탈출합니다. p49에서 "연변계"는 아마 "변연계"의 오타이겠습니다. 1권에서는 내내 변연계라고 제대로 표기되었었습니다. 

사람 중에서도 미친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겠는데... 그러나 1권 끝에서 움베르토가 뤼크레스를 가두었을 때도 사실 이런 작자가 주인공에게 무슨 해를 가할 수나 있을까 싶어서 별 걱정이 안 되었던 것도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드디어 2권 p58에서 미친 로베르 "박사님"이 뤼시앵을 찾을 때 우리의 뤼크레스가 봉변을 당하는구나 싶었지만, 광인 답게도 어처구니없는 가학(?)이 행해지기에 독자들은 크게 웃게 됩니다. 베르베르 작품 특유의, 어떤 불편한 극단으로 마구 치닫지 않는 편안한 장치입니다.



정상인들은 광인들더러 미쳤다고 하고, 광인들은 그들대로 어떤 컨센서스를 이뤄 외부 세계를 두고 미쳤다고 규정하며 자신들만의 강고한 성벽을 쌓습니다. 이는 소설 속에서만의 사정이 아니라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정치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반대 진영을 향해 미쳤다고, 사악하다고 단죄를 서로 서슴지 않습니다. 마치 중세의 종교 전쟁과도 같아서 어떤 중간지대의 타협점이라는 게 없습니다. 상대의 절멸에 이르러야 비로소 끝이 날 이런 싸움을 이어가자는 이들이 과연 정상일까요? p83에, 1권 말미에 나왔던 "데우스 이라이", 즉 신의 분노(2권에서는 p92)라는 단체(혹은 그 조직원)가 다시 언급되네요. 

p222에서, 아마 독자들 중 아무도 예상 못 했을 반전이 나옵니다. 1권에서부터 계속 나왔던 ooo가 사실은 ooooo였던 거죠. 와. 사실은 1권에서도, 뤼크레스가 이지도르더러 남매간이라면서, 성씨가 다른 이유는 전남편 성을 써서라는둥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복선이었던 셈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그 최후까지 지켜야 그 존엄이 유지됩니다. 이를 무시하고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 든다면, 그 후과는 아마 상상도 못할 참혹한 종말이 되겠지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