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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통치되는가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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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이란 말은 아서 슐레진저가 당시의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비판하기 위해 처음 쓰인 말이라고 합니다(p30). 그러나 닉슨은 탄핵 위기에 몰려 결국 자진사임 형식으로 물러났고, 이후에는 이런 비판이 일어난 적이 드뭅니다. 대통령제란 그 본질적 특징으로 인해 원래부터가 제왕적 시스템으로 흐르기 쉽기는 하나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 대통령제가 이제 더이상 한국의 정치 현실과 사회 구조에 안 맞는 점이 있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개헌 논의로 이어질 만한데 만약 개헌이 필요하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요.
미국은 한국과 달리 연방제 국가입니다. 또 책 p40에 잘 나오듯, 미국의 정당은 소속 의원들에 대한 기율, 기속이 느슨하며 이 때문에 이른바 크로스 보팅이 자주 생깁니다. 이러다 보니, 양원제도 아니고 단일제(unitary) 국가 체제인 한국에 과연 대통령제가 최적이긴 한지 의문이 들 법합니다. 또 pp.50~57에 서술되듯 정치적 책임성 구현의 어려움, 임기 후반의 통치력 약화 등 고질적인 문제가 번번이 모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었습니다. 또 한국은 거의 주기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블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런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p63)은 종종 여야 간의 극한 대립을 부르며 심지어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 탄핵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1992년 브라질의 꼴로르 대통령, 1988년 한국 13대 국회 여소야대, 2006년 대만 천수이볜 총통 탄핵 시도 등을 예로 듭니다.
물론 의회도 전국민이 참여하여 구성되는 의사체이긴 하나 그 구성원인 헌법기관(즉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평균 20만 정도의 선거구에서 뽑히는 대표이며, 대통령은 거의 4천만에게 주어지는 선거권이 모이고 모여 선출되는 자리이고 보면 민주적 정당성과 권위가 막대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만큼 한 나라의 이상적인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p86. YTN 방송 중 호준석 앵커 멘트 재인용)"이라야 하겠는데, 현실적으로 이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내내 문제된 건 집권여당의 이른바 "총재"직을 대통령이 거의 언제나 겸직해 온 관행(p91) 때문이었는데 이 전통은 노무현 대통령 때 깨졌고 "총재"라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직함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총재"는 한국은행 수장 자리가 거의 유일한데 이 직위에 이런 이름이 계속 남게 된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죠. 여튼 저자는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그 나라의 토착 정치 현실에서 뿌리내린 예가 거의 없음을 지적하며, 왜 세계최고의 민주주의 모범국인 미국에거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제도가 다른 나라들에서는 유독 독재로 변질되거나 극심한 시행착오를 겪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뢰벤슈타인이 창안한 신대통령제에 보다 풍성한 내용을 더한 모리스 뒤베르제는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어느 법칙에서,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는 양당제나 거대 정당의 과대대표 현상이 벌어지기 쉽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반면 대표성의 보다 철저한 구현을 지향하는 독일 의원내각제는 이미 바이마르 헌정 초기부터 소수정당의 난립으로 인한 폐해가 심했는데 이를 지양하기 위해 전후 이른바 건설적 불신임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내각제는 그 총리를 다수당에서 배출하는 게 상식이고 자연스럽게 간선제(의회 선출) 형식이 되는데, 독특하게도 이스라엘만큼은 한때 이를 직선제로 또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제의 대통령과 다를 게 뭔가 하겠는데, 의회에서 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는 점 등은 내각제 요소 그대로이고 오로지 총리 선출시에만 국민직선이란 거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러면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단점만 고스란히 유지하는 셈이며 이 기형적 제도는 얼마 안 가 폐지되었습니다.
이원집정제 혹은 반대통령제는 특히 프랑스 5공화국 기간 중 동거정부(대통령 좌파 미테랑, 총리 우파 시라크) 하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졌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동거정부는 좌우진영을 달리하여 여러 차례 등장한 적 있죠. 책에서는 이런 이원정부, 예컨대 폴란드나 핀란드 등이 서서히 내각제에 수렴해 간 역사적 예(p211)를 드는데 사실 프랑스 역시 7년제였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이는 등 내각제스러운 면모를 더해 가는 중입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변화할 필요가 있고, 그런 요구가 모이고 모이면 개헌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치러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대정신의 변화도 변화이거니와 애초에 시스템 자체에 내재적 결함이 행여 있었다면, 이를 고치기 위한 시도에 국민적 용기를 낼 이유도 한층 근거를 강화한다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