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근대적 통치성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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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이 속성이 통치성에 끼치는 영향은 어떠할까요? 한국정치학계의 거두인 이동수 교수님이 정기적으로 펴내시는 여러 정치학 총서들(우수한 논문등을 함께 엮은)은 재야의 아마추어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사이트와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19세기 서세동점이라는 불행한 역사적 체험을 겪으며 동양은 비자발적으로 근대화의 호된 과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과연 근대성은 21세기인 지금 각국의 정치제도와 이념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까요, 아니면 혹 서양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 모델을 어느 정도 형성하여 대안을 마련이라도 해 가는 추세일까요.
"유학에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지식인들은 불교와 도교의 세련된 교설에 매료되었던 것이다(p16)." 사실 유학은 특유의 객관적 관념론에 집착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제기되던 여러 형이상학적 질문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비생산적인 괴력난신 담론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유가의 특장이기도 했습니다만 문제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하는 방식은 담론 생산에 종사하는 지식인 진영 자체의 자괴와 불만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외부(불, 선)로부터의 도전이 이어지자 이에 응전격으로 나온 것이 정호 정이 형제, 주돈이, 그리고 주희의 성리학이었습니다.
사실 성리학은 한반도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 과정만 봐도 그 당시로는 철저한 자체 개혁과 근대성을 지향한, 대단히 혁신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단지 왕뿐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문명화를 통해 평화(와 공자가 이야기한 도의 경지, 치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p33)." 책에서는 당시 신진 사대부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던 조준, 권근 등의 논변을 소개하며 직전 수 세기 간에 걸쳐 일어났던 외환(원, 홍건적, 왜구)과 내적 모순(권문세족과 사원의 착취)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민생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지 깊이 고민하던 정치 상층부의 고민을 조명합니다.
또 정도전의 정치 비전도 소개됩니다. "정치의 두 대강(大綱)을 재상의 조정(coordination)과 간관의 비평(critique)으로 보았던 것이다(p49)." 사실 이미 당시로부터 오백 년 전인 고려 초창기에도 재신과 추신의 합좌(도병마사)로 국정이 운영되긴 했습니다만 추신은 간관과는 또 포지션이 다릅니다. 정도전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정치란, 이처럼 왕의 절대권이 재상의 대행(代行)과 간관의 끊임없는 견제 속에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민생의 과제가 장애 없이 완수된다고 여겼고 이것이 14세기 사대부가 지향했던 근대성의 본체였겠습니다.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를 우리 나라 신문의 효시로 보통들 간주합니다. 책 p116에서는 한성주보로 재간된 언론 지면에 실린 논설을 인용하며 박영효, 유길준 등의 지식인, 관료가 국제 정세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서술합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정치학은 이상주의 담론과 현실주의 페리스코프가 영원한 길항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하는 학문인데, 이 당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충돌하며 각축을 벌인 열강의 침략이 어느 오지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사방에서 마수를 뻗치던 시기라서인지 다들 현실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인 주장을 펼치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일본은 자체 역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무사도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853년 매슈 페리 제독의 강제 개항 요구를 기점으로 막부의 위태위태하던 권위가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이른바 명치유신이라는 게 완수되고 나서는 신시도(신사도. 神士道)라는 게 국혼(國魂)으로까지 내세워져 "구 무사계급이 노정했던 치태(痴態)"(p177)를 전면적으로 극복하는 대안으로 숭앙되었습니다. 이런 그들 특유의 의기양양한 행보는 러일전쟁의 승리를 맞아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 책(논문집)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삼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듯 미셸 푸코의 체계에 그 연원을 둡니다. 특히 김정부 교수의 인도 재정 예산 제도에 대한 분석에서 예의 푸코 이론은 낱낱이 적용되어 현대 인도 정부의 경제 부처 작동 원리를 해부하는데 특히나 아시아 국가 중 혹독한 식민 통치를 받았던 인도가 20세기 독립 과정을 거치며 근대성을 어떻게 내재화해 가는지를 치밀하게 조명합니다.
중국은 이와 대조되게도 민본과 민주 사이에 노선의 혼란을 겪으며 포퓰리즘와 권위주의 사이를 방황하다 끝내 전체주의 체제 하의 통일로 귀결되었으며 터키는 제국이 붕괴되고 국가 소멸의 위기를 맞았으나 케말 파샤라는 구국 영웅의 노고 덕에 이슬람 구태를 청산하고 근대화 루트를 걷다 최근 에르도안의 기만적 독재로 다시금 퇴행합니다. 동양은 이처럼 갖가지 양태로 제 나름의 근대를 소화하며 고유의 통치성을 표현하기에 그 귀추가 각별히 주목된다고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