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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님의 선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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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4.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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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님의 선 명상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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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전쯤에 영화 스님의 <정토 수행 지침서> 제1권을 읽고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한글로 영화 스님이라고 표기되지만 우리 나라 분이 아니시고 미국에서 Master YongHua라 불리는, 미국식 대승불교의 새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영어로 master라 마치 작위처럼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아무래도 불교에는 낯설 미국인들이 그렇게나 영혼의 스승으로 추앙한다 하니 스님의 높은 경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American chan handbook"인데, 예전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zen이라 주로 블리던 선(禪) 불교의 번역어가 이제는 중국 식으로 chan이라고도 통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영화 스님은 베트남 혈통이시며 북베트남이 공산 통일을 완수하기 전 도미(渡美)하여 학업을 닦았습니다. 구식 베트남 전통을 좇자면 이 스님의 법명은 한자로 永化라고 쓰며, 베트남 역시 우리처럼 대승불교가 주류이고 그 중에서도 선불교 중심인 게 특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인들은 우리 한국인들이 평균적으로 수행하는 방법보다는 훨씬 더, 신체의 바른 동작과 자세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마치 요가도, 마음의 수양이나 도의 깨침보다는 건강과 체형 교정에 더 큰 목적이 있는 양하듯 말입니다. 물론 한국식 전통 불교도, 예컨대 삼보일배를 바른 동작으로 수행하면 몸에 전혀 무리가 안 가고 오히려 운동이 된다고 하듯이, 신체의 올바른 작동을 소홀히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국 불교는 마음 수련 위주라고 해야겠죠. 이 책의 제3장, 4장, 5장은 명상과 단전 호흡을 다루는데, 흑백 사진(약간 세피아톤인 게 옛스러움을 더합니다)이 잔뜩 실려서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결가부좌(結趺坐)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목 구조인 이 말에서 "가부좌"가 동사 "결"의 목적어이며, 자세를 가리키는 핵심 뜻은 "가부좌"가 담았습니다. 책 p73에는 이 가부좌 자세의 고통스러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부러 몸에 고통을 가하는 수행을 쓸데없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가부좌도 공연한 고생이 아닐까요? 영화 스님은 우리들의 이런 철없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십니다. "마음이 널뛰기를 할 뿐이라서 가부좌가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면, 하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면, 가부좌의 고통은 자연스럽게 잊혀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입니다. 

경계(p103)는 책 제11장(p74~)에서 논의되었던 삼매(三昧)와는 또 다른, 명상시에 만날 수 있는 무수한 체험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를 한자로는 境界라고 하는데, 경계선이라고 할 때의 그 한자와 같지만, 불교에서 말할 때는 저렇게 다른 뜻을 가집니다. 이 책의 원서에서는 영어로 state(s)라고 표현했습니다만 한자어가 더 먼저이며, 빠알리 원어로는 गोच(고카라), 범어로는 विषया(비사야)라 했던 걸 구마라습과 (더 후대의) 현장이 한참 후에 저리 한자로 옮겼습니다. 여튼 이 명상 중에는 온갖 잡스러운 감각이 다 느껴집니다. 그러나 집중을 통해 그 삿된 유인, 꾐을 다 떨쳐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책 p104에 나오는 대로, 임제의현은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정도일념으로 정진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은 이미 부처가 아니라 제바달다인 까닭입니다.  

영화 스님은 베트남 분이신 만큼 이런 말을 합니다. "베트남 속담에, 과일을 먹을 때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해야 한다는 게 있습니다.(p123)"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은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두루 유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는, 감사의 마음은 간데없고, 참으로 한심한, 분수에 맞지도 않은 허황된 꿈을 꾸면서 남한테 사기나 치고 부도덕한 목적을 이루려 타인을 부속품으로나 이용하려는 무뢰배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짓을 하는 건데, 언젠가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천벌이 그 부실한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p157에는 <전등록(傳燈錄)>으로부터 이런 구절이 인용됩니다. "夫道人之心,質直無僞. 無背無面,無詐妄心. 行一切時中,視聽尋常. 更無委曲,亦不閉眼塞耳,但情不附物卽得." 요컨대, 남들이 뭐라 떠들든 항심의 자세로 도를 향하며 부단히 정직한 노력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목적을 이루고 만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능력에 부치는 욕심을 부리다 쇠고랑을 차느니, 부처님의 제자 주리반특가처럼 타고난 나쁜 머리를 탓하지 않고 열심히 변소 청소라도 할 때에 극락왕생의 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외부 세계는 우리 내면의 투영일 뿐이니 밖을 쫓지 마세요!(p176)" 스님의 통렬한 가르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