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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샘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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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5.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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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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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대중과학서 저자 샘 킨의 책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일단 샘 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최소한 책이 지루할 일은 절대 없겠다며 기대를 품게 됩니다.  

18세기, 19세기 들어 서유럽 중심으로 자연과학 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가시적 성과도 성과지만 종전의 한계, 궁핍, 불편을 운명처럼 체념적으로 수용하던 인류에게, 어떤 도전 정신, 낙관주의를 마음에 심어 준 게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은 과학자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반인들한테는, 기행을 일삼고 반사회성을 표출하며 심지어 끔찍한 범죄까지 저질러 악명을 후세에 남긴 일부 과학자들의 행적이 대단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엄연히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이니 인정은 해야 합니다.

다만, 과학이라는 테마 자체에 내재한 매우 위험한(위험할 수도 있는) 속성에 이런 비극들이 주로 기인했을 뿐 그 원인을 과학자 일반의 속성으로 귀납하기란 매우 큰 무리라는 점도 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편한 도구를 갑자기 손에 넣게 되었을 때 이를 나쁜 목적, 즉 가학성의 발휘라든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데 쓰려는 못된 마음이 우리 내면에 잠재하지는 않는지 오히려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하겠습니다. 

"노예 제도는 문명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p60)." 한국처럼 대륙의 먼 동쪽에 고립된 지형에 오래 전부터 터잡고 단일민족으로 산 겨레에게는 노예제가 상당히 낯섭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도 몽골, 왜인들의 침략 당시 포로로 잡혀 국제 시장에 노예로 끌려간 이들이 많았고, 솔거 노비, 외거 노비도 일종의 노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인신매매가 활발하지는 않았고 외거 노비의 경우 노예라기보다는 농노에 가까웠으며 천민 신분이라는 게 타 종족의 귀화, 형벌 집행의 결과물로 취득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외국의 노예제와 함께 볼 것은 아닙니다.

여튼 노예제와 과학자가 무슨 관계라서 이 책에 등장했는지 의아한 분들도 있을 텐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박물학자들이 동식물 표본을 구하고 싶을 때 이 노예 무역 인프라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연구가 하고 싶어도 무슨 표본이 있어야 가능할텐데, 이를 위해 따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발달된 현대 국가 체제에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예제와 직접은 무관하지만 찰스 다윈 같은 사람도 박물학자의 범주에 속합니다. 사실 뭔가 큰 이익이 남지도 않는 판에 온갖 위험,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그 먼 바다를 건너온다는 게 무리이며, 노예 무역이 그만큼 큰 수익을 올려 주는 유망한 비즈니스였다는 뜻입니다. 노예 무역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심지어 본인이 항행에 적극 참가하고 현지에 일정 기반을 다지기까지 한 박물학자로는 이 책에 헨리 스미스먼이 소개되는데, 자기 딴에는 원없이, 재미있게(?) 한 생을 산 사람이라 이야기로만 읽어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미국은 한때 전기의자 방식이 사형수 처결의 원칙이었으며 이를 소재로 삼은 범죄물, 미스테리물도 무척 많습니다. 전기의자 자체가 사형의 제유(提喩)이기도 합니다. 이 사형 방식을 두고 치과의사(이상하게도, 역사에 남을 기행을 벌인 이들 중 치과의사들이 제법 됩니다. 물론 선량한 의료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만) 앨프리드 사우스윅이라는 이가 독극물 주입에 반대하여 전기의자 식을 옹호했으며, 발명가로 유명한 에디슨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 생각인데, 당시 막 상용화를 앞두던 전기 시스템에 공연히 끔찍하고 잔인한 대중적 선입견을 피하려는 비즈니스상의 고려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아무튼 윌리엄 켐러라는 사형수에게 집행된 처분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이 책 말고도 여러 서적에서 논할 만큼 당대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7장의 주제 인물은 터스키기 매독 연구로 악명 높은 존 커틀러입니다. p233에, 잘생기고 샤프해 보이는 생전 그의 사진이 나옵니다. 과테말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사람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애 비견될 만큼 칭송받던 의사였습니다. p232를 보면, 존 커틀러와 정확히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아이티와 인도에서 여성들의 부인과 치료 접근성을 쉽게 했으며, 에이즈 환자들을 악마화하지 말라는 도덕적 호소로 세계를 감동시킨 의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누군지 책에는 끝까지(?) 안 나옵니다. 이 사람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바로, 그의 악행이 폭로되기 전의 존 커틀러 본인입니다. 제가 영어 원서룰 읽어 보니 "괜히 말을 꼬아서 사과한다"는 독자에게의 사과(?) 문장이 있더군요.

8장에는 에가스 모니스, 그리고 후계자 격인 월터 프리먼 이야기가 나옵니다. 훌륭한 가문에도 지능이 떨어지는 자녀 한둘은 있기 마련인데, p269에 나오는, 딸 로즈메리에게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게 해서 더 인생을 망치게 한 정계 거물 조셉 케네디가, 우리가 아는 존 F 케네디의 부친입니다(로즈메리는 JFK의 여동생이며, 지금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로버트 주니어의 고모입니다). 전두엽 절제 수술 이야기는 한때 이런 어설픈 의사들에 의해 하나의 처방처럼 통했고, 많은 장르물에서 즐겨 쓰던 소재였죠. "얼음 송곳(icepick)"은 영화 <원초적 본능>에도 나왔던 끔찍한 도구인데, 이걸로 뇌 수술을 했다니 정말 대단한(?) 의사들이었다 싶습니다. 참고로 이 책 원서 제목이 <The icepick surgeon>입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심리학을 악용한(p347)" 나쁜 사례라는 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어떤 정신병리학적 누명을 씌워 시설에 가두거나 그 이상의 끔찍한 처분을 했던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구 소련의 탄압 사례라든가,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가하는 비정상적인 압제가 이 책에서 예로 쓰이는데, 저는 혹시 "인체의 신비 전시회"도 언급이 있지 않을지 기대했지만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직 객관적 증거가 충분치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장에서는 한때 유나바머 연쇄 테러로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수학 천재 테드 카친스키 이야기도 나옵니다.

대개의 경우 "미친 과학자"는 과학 자체에 대해서는 지극히 헌신적이고 이념을 위해 팩트 자체를 왜곡하는 건 매우 드문데(하긴, 제대로 미쳤으면 뭘 더 못하겠습니까만), p312에 나오는 리센코의 경우 독재 정권에서의 출세를 위해 과학적 원리까지도 마음껏 비틀었던 최악의 케이스로 꼽힙니다. 냉전 시기 해리 골드는 적국으로 너무도 많은 정보를 빼돌려 옥살이까지 했지만, 감옥에서 자신의 재능을 잘 살려 동료 죄수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등 치밀하고 유능한 과학자로서의 면모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철학자 니체도 지적인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라는 개념을 말했는데, 지식 발견이라는 한 가지 난제와 미션에 몰두하는 이들, 특히 자연과학자나 의사라면 그 본연의 업무 성격 때문에라도 쉽사리 거짓말이나 일탈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듯 현실은 결코 그렇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천인공노할 범죄를 체계적으로 저지른 게 나치와 닥터 멩겔레 같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인용하며, 정직, 성실성, 양심적 태도 등의 미덕을 과학자 양성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437). 그래서 이 책은 본문도 본문이지만 결론과 보론 파트도 독자에게 묵직한 임팩트를 줍니다. 권말의 항목 색인이라든가 문헌 소개까지도 완벽하여, 역시 과학책은 해나무다 싶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