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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내 생각이 맞다고 설득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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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7. 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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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내 생각이 맞다고 설득하는 기술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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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생의 철학 한 분파의 대표 주창자로 알려졌지만, 지혜로웠던 그는 생전에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실용적인 논의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 담은, 토론에서 효과적으로 자기 주장을 전개하고 상대를 논파하는 방법들인데, 읽어 보면 쉽기도 하면서 요령 있게, 또 쇼펜하우어 자신의 시대에 실제 있었던 사례를 풍부하게 인용하며 독자를 이해시키는 점이 특징입니다.

상대의 주장이 대체로는 맞다 싶을 때에도, 교묘하게 그 허점을 파고들어 예봉을 꺾는 기술이 있습니다. p23 이하에 나오는 대로, 상대의 주장은 확대시키고 내 주장은 축소해서, 상대 주장이 안 들어맞는 반례를 들어 전체를 무력화합니다. 반대로, 내 주장은 그 범위를 싹 줄여서 제한된 의미로만 타당하게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가 옳다는 인상을 주게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1814년의 평화조약을 옹호하고, 상대는 반박하는데, 이 논쟁은 독일 민족주의 vs 나폴레옹이 내건 자유주의의 대립이 그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1848년 유럽 전체를 휩쓴 2월 혁명의 바람도 고려해야 합니다.

p36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제기했던 "검으면서도 검지 않은" 무어인의 역설이 나오는데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 견백동이론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 파트에서도 쇼펜하우어는 나의 논리 그 장점은 극대화하고, 상대의 모순은 극대화한다는 대전제를 유지하며 논의를 이어갑니다. 동음동형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뜻이 다른 개념이 있는데, 책의 예에서는 기사의 명예(끝까지 가는)와 상인의 명예(영업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를 동일시하여 상대를 궁지에 모는 기법이 나옵니다. 명예라고 해서 다 같은 명예가 아님을 간과하는 데서 나오는 함정이죠.  

p61을 보면 상대의 주장에 비슷하게 들어맞을 것 같은 비유를 들되 과장되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한 걸 뒤집어씌워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나옵니다. 책에서는 (상대가 옹호하는) 변화를 혁신으로 과장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현대 한국어에서 혁신은 나쁜 뜻이 아니므로 역시 시대상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같으면, 진보라고 하면 좋지만 과격, 급진이라고 하면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갑자기 확 납니다. 심지어 한국어로도, 일제 강점기나 1950년대라면 혁신계열이 그리 좋은 의미의 정치 진영이 아니었습니다(적어도, 그런 뜻으로 통용되었습니다). p126에 나오는, "상대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로 밀어넣으라"는 주장도 서로 통합니다.

p74에 나오는 건 일종의 인신공격 오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베를린은 살기 나쁜 곳이다."라고 하면, "그럼 왜 당신은 베를린을 당장 떠나지 않는가?"라고 받아치는 것입니다. 이건 한국에서 정확하게 이에 해당하는 예가 있는데, 이 후기에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 외에도 책에는 자살옹호론자에 대해 "그렇게 좋으면 당신부터 해 보지 그러는가?"라며 제압하는 기술의 예가 나옵니다. 이는 논리학에서는 모두 오류에 포함시키는 것들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논리학의 오류 범주에 속한다며 토론의 규칙을 깨는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막말을 한다"며 감정에 호소하곤 합니다. 이는 상대와 똑같이 오류에 빠지는 선택일 뿐 아니라, 제3자에게 "저 사람은 약하다" 또는 "토론에서 졌다"는 인상을 주기에나 좋습니다.

p97에 나오듯 상대방의 주장을 고대로 돌려 주며 받아치는 방법이 가장 통쾌합니다. 책에 나오는 예로 "아직 애가 어린데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이 있다면, 이에 대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바르고 엄한 훈육이 필요하다"고 받아칠 수 있는 것입니다. p105를 보면 쇼펜하우어가 중국에는 세습 귀족이 없으며 과거로만 인재를 뽑는다고 칭찬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쇼펜하우어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프랑스 루이 14세 때에도 유럽에서 제기되던 주장입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즐겨 들던 논거이기도 하죠. 이때 상대가 물타기를 한 방법은, 관료 직분을 잘 수행하는 데에 훌륭한 신분만큼이나, 학식도 꼭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권말에는 쇼펜하우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논리학과 토론술이 어떻게 혼용되었으며 또 어떻게 구분되었는지 자세히 분석하여 독자의 지적 욕구를 채웁니다.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