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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 헤르만 헤세 (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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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9.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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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인생론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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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이 말 자체는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했습니다만 워낙 보편타당한 진리를 전하는 명언인 까닭에 어느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들려 줘도 효과가 큽니다. 푸시킨보다 130여년 후에 활동한,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의 주옥 같은 산문들, 그 결론을 저 문장으로 요약한다 해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실제로 헤르만 헤세의 삶 역시 그의 뜻대로 술술 풀렸다든가 평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받았던 숱한 상처는 거꾸로 그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 자양분이 되어 그에게 문학가 최고의 영예라 할 노벨 문학상까지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1920년에 그는 이런저런 에세이들을 모아 <Blick ins Chaos>라는 책을 내었는데 지금 이 책 제4장 "도스토옙스키에 대하여"가 그 주된 내용을 담습니다. 1920년은 일차대전이 마무리되고 다소 기반이 허약한 경기 호황을 맞아 전유럽(독일 제외)과 미국이 흥청거릴 무렵입니다. 1922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그 유명한 책 <서구의 몰락>을 저술했는데, 제국주의적 팽창의 한계 노출, 사회 도덕의 해체, 성적 방종 풍조의 끝간데 모를 확산 등으로 이미 지성인들, 시민들 사이에 저런 위기감이 팽배했었습니다. 지고지순한 휴머니즘, 오염되지 않은 정교적 가치 등을 끝까지 믿었던 셋째 알료샤와 달리, 첫째 드미트리와 둘째 이반은 각각 폭력적 가부장주의, 더러운 육욕, 이성주의를 가장한 무신론, 유물론(p124) 등을 위험스러울 만큼 밀고 나갑니다.

독특하게도 헤세는 이 대작에서 유럽 문명의 위기를 상징하는 장치를 발견한 셈인데... p255에서 헤세는 도스토옙스키의 해석(캐릭터 이반의 목소리로 표현됩니다)에 반대하며, 그런 악덕은 러시아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고국인) 독일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냉소적으로 주장합니다. 아마 그는 이 근사한 이야기를 도스토옙스키에 앞서 자신이 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을 듯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4년 전에 헤세가 태어났습니다. 헤세가 이 글을 썼을 때 독일은 일차대전에서 패망했고, 전범 수괴로 지탄 받은 빌헬름 2세 황제는 그 독특한 개성과 기행(奇行)을 근거로 세계로부터 비판과 경멸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헤세는 빌헬름 2세를 신랄히 비판하며 "아마 그는 카라마조프를 몰랐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합니다. 이 대작을 생전에 그가 읽었더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악마성을 반성하여 끝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리라는 기대로 읽힙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또한 대작 <백치>를 통해, 평균보다 부족한 인간형 안에 내재한 어떤 신성(神性) 같은 걸 꿰뚫어 봤으며, 인간계의 질서와 가치가 어떻게 평소의 위엄을 잃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타락하며, 그 내부의 모순을 수치스럽게 폭로하며 형해화하는지 놀라운 필치로 분석합니다. 헤세는 도스토옙스키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 난해한 작품을 유영하며 정확히 꿰뚫어보았으며, 천재의 문학 작품(겉으로 보아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에서 건진 질서의 아름다운 요체를, 이제 전쟁을 통해 철저히 파괴되고 대안의 질서를 모색하는 유럽의 발돋움, 몸부림에다 투영합니다. 이 글은 이처럼 글이 쓰인 시대상을 감안해야 그 주제의식이 정확히 파악됩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을 넘으면 사람이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p110 이히에 나오는 대로, 사람의 태도, 거동, 표정, 분위기에 숨은 여러 족적은 학자나 지성인, 정치인 등보다 농부, 삼류 변호사 등이 더 직관적으로 정확히 읽어낼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있는 체험으로 꾸려졌는지는 당사자 자신만이 정확히 알 터이며, 나 아닌 다름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 (설령 그것이 아무리 피상적인 판단에 근거했더라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굴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모르는 새에 누가 슬쩍 조각하고 간 낙서용 석고덩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헤세가 담담한 어조로 표백하기에 더욱 설득력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소년 시절의 고통스러운 체험, 조국 독일의 어리석은 폭주와 패망, 성인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겪곤 했던 또래집단에의 부적응, 친구의 배신 등에 대해, 헤세는 이 책 곳곳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사진들을 보면, 인품이라든가 깊이 있는 혜안 같은 것과는 별개로 참 슬픈 삶을 산 분이겠다는 짐작이 절로 듭니다. 그의 거칠고 척박한 생이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꽃을 피우게 도운 횃불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졸라, 입센, 루터(p64) 같은 문학가, 사상가들의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詩)가 간혹 공허한 아름다움 때문에 환멸(p146)을 안긴다 해도, 역시 그건 그것대로 고유한 효용이 있다는 문장을 보고, 헤세가 책을 얼마나 사랑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