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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도시의 선택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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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도 있는 삶을 이뤄가는 공간입니다. 한국의 경우 지방소멸, 촌락의 기능 상실을 우려하지만, 사실 도시야말로 한번 망조가 들면 답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등이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이제 도시의 폐쇄를 걱정하는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도시가 번영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이곳에 이주하면 내 삶에 빛이 깃들려니 하는 어떤 희망을 줘야 합니다.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의 힘찬 발걸음만 봐도 절로 생의 의욕이 전염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도시에 경제적 융성을 위한 산업적 기반이 마련되어야겠죠.
그러나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단순한 물적 기반을 넘어 그 정신적 충전을 위한 인프라 역시도 절실합니다. 수도권의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취업하기를 그토록 꺼리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 책은 종전에 애매한 위치였던 여러 도시들이, 어떻게 문화적 전략을 성공적으로 취하여 부흥, 부활에 성공했는지를 집중 분석합니다.
유럽의 도시를 두고는 중세부터 이런 속담이 있었습니다. Stadtluft macht frei. 번역하면 "도시의 공기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뜻의 독일어인데, 물론 도망친 농노가 도시에서 일정 기간을 지내면 자유민이 된다는 불문법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도시의 기풍이라는 게 자유를 본질로 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경구이기도 합니다. p64에 나오는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과대학의 소재지이기도 한데, 예술가, 공예가, 과학자, 심지어 노동자까지도 자유롭게 창의적 활동에 종사하게 돕는다는 현대적 정책이 멋진 성공을 거둔, 도시 부흥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노동자를 두고 wage slave니 하며 자유롭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곤 하지만, 언제든 유리한 조건이 나타나면 즉시 그만두고 떠날 수 있다는 게 벌써 큰 자유이며 죽을 때까지 장원에 예속된 중세 농노들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죠. p47에 나오듯, 시민들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는 정책이 이 도시를 살렸다는 유네스코의 보고서는 진실의 핵심을 찌른 것입니다.
국가 마케팅, 도시 마케팅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중산층이나 자산가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 벌써 호주, 스코틀랜드 등에서 자국에 투자하거나 관광오라고 브로셔가 우편으로 발송되곤 했었습니다. 주로 주한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이런 마케팅을 했는데, 이때 솔깃해한 이들이 해당 국가나 지방으로 아예 이주한 경우도 꽤 되었겠으며 이는 1960년대의 생계형 이민과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p84를 보면 이런 도시 마케팅은 과거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차원적 노력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과거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형성하려는 적극적인 캠페인이라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 지적합니다. 이것 관련, 커니(Kearney)라는 컨설팅 회사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글로벌 도시 보고서는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p117에는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도시 혁신의 필수 요소 4가지와, 문화예술 활동(앞에서 말한, 도시 혁신 4요소 중 하나이기도 한)의 4가지 핵심이 표로 잘 정리되었습니다. 시간이 정 없는 이들은 이 표 하나만 봐도 목적의 80%는 달성된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이 표에서도 다시 확인 가능하지만, 도시의 문화 부흥을 위한 4요소는 장소, 사람, 프로그램, 환경입니다.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정책입안자들이, 이 책을 교과서 삼고 해당 페이지를 복사하여 파티션 벽에 붙여놓고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멋진 자료라고 하겠습니다. 장소 중심, 사람 중심, 프로그램 중심, 환경 중심 활동의 다양한 디테일과 각론이 무엇인지는 그 다음 부분에 자세히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프로 스포츠 리그에 무슨무슨 더비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사연 있는 라이벌전처럼 보이게 하는 홍보, 혹은 미디어 상의 화제 만들기가 성행합니다. 어떤 건 억지 같지만, 사람들은 알면서도 즐겁게 속으며 뻔한 패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마케팅의 호흡에 적극 동참합니다. p156에 나오는 리버풀 재생 캠페인에 동원된 머지사이드 더비도 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예전에 백범께서는 "오로지닮고 싶은 건 문화의 힘"이라고 했는데, 리버풀은 도시 전체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세계의 팝 아이콘 비틀즈를 보유한 도시입니다. "비틀즈는 갔어도 그들을 낳은 리버풀은 (마케팅과 함께) 영원할 것"이라는 책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나오시마는 한자로 直島라 씁니다. 책 p186에서 순진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 함은 저 한자를 고려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유럽 공업국 대열에 합류하려 눈물겨운 노력을 벌일 때 이 섬에는 구리 제련소가 세워졌습니다. 그 결과는 오염 물질 배출로 인한 대대적인 환경 파괴였는데, 무엇이든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도로 세우기란 정말 힘듭니다. 이 제련산업이라는 게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는데, 문제가 1990년대 들어서도 해결이 안 되고 계속하여 섬을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게 더 충격입니다. 이 섬, 청년이 없고 노인만 남은 비전 붕괴의 섬에 희망을 다시 불어넣은 이가, 문화의 엄청난 힘을 이해한 어느 출판사 대표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감동적입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만든다." 그러나 그 자유의 공급원은 치르는 비용 없이 공짜로 무한정 돌아가지 않습니다. 각성한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굴뚝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의 맑은 영혼을 사랑하는 이들의 예술혼, 창의력이야말로 도시의 진정한 엔진임을, 이 책은 체계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일깨웁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