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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문학 예찬 (지그문트 바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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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11.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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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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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만 봐서는 헷갈릴 수 있으나 지그먼트 바우만은 독일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나치 독일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은 폴란드계 유대인의 일원이며, 이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기에 지금 이 책 <In praise of literature>도 원서가 영어로 쓰였습니다. 만약 지그문트 바우만이 독일인이었다면 저 Zigmunt Bauman이란 철자도 매우 다르게 적혔을 것입니다. 심리학의 개조 프로이트처럼 Siegmund였겠으며, Bauman도 끝에 n이 하나 더 붙은 Baumann이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무튼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후 공산주의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사회학자로 열심히 활동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이른바 68혁명이 일어났고 이 여파가 폴란드에까지 미쳐 공산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났죠.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무우카(예전 책들에서 "고물카"로 표기되던 사람)는 이를 진압하고, 흉흉해진 민심의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뜬금없이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한심한 책략을 부렸습니다. 폴란드에 인민공화국이 들어선 건 나치에 짓밟힌 조국의 자존을, 마르크스주의(나치의 가장 큰 적)를 통해 실천적으로 회복하려는 민중의 몸부림이었는데, 이 자는 기가 막히게도 나치의 악행을 계승하여 손쉬운 마녀사냥을 부채질했던 것입니다. 바우만 교수는 이때 정든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이후 다시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출신 편집자 리카르도 마체오와의 의견 교환 형식으로 쓰였습니다(대담[對談]은 아닙니다). 마체오 에디터가 대체로 "문학" 진영을 대변하고, 바우만 교수가 "사회학"을 옹호하는 스탠스로 볼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어차피 리카르도 마체오도 인문학 다방면에 소양이 깊은 분이고, 바우만 역시 전인적 시야로 문학을 사회학적, 철학적 지평에서 능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성이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거의 같은 지점을 나란히 응시하며, 때로 살짝 조(key)만 달리하여 화성을 이루는 이중창을 연주하는 듯도 보입니다. 

바우만 교수가 격동의 20세기 한복판을 지내온 분이기에 혹시 이 책도 어떤 고색창연한 주제만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p92를 보십시오. 18세기 계몽사상의 대표적인 두 사상가 볼테르와 루소의 시대에서, 마체오 에디터는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이렇게나 약해졌는지 그 단초를 찾아냅니다. 아버지의 권위 실종과 남성성의 시대적 퇴조는 철학, 사회학, 문학 등 어떤 관점에서 봐도 현대적인 현상이며, 다만 리카르도 마체오는 그 뛰어난 인문적 식견으로 이를 18세기까지 소급해 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인용하는 책은 루이지 조야의 <Il gesto di Ettore. Preistoria, storia, attualita e scomparsa del padre>인데, 2009년에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이미 번역도 되었습니다.

제6장은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인데, 물론 소멸하는 건 중개자이며 인터넷에 별반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개설하여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블로그는 그 세부 형태만 달리하며 발전 중입니다. 또 유튜브 등 뉴미디어, 트위터(현 X)나 메타 등 소셜미디어는 이미 전통적 중개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중이며, 신문과 잡지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매체들이야 당연히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 원로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 같은 이가 이 이슈에 대해 각별한 소회를 피력하는 게 당연하죠. 이에 대해 바우만 교수는,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은 저 토마스 그레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코페르니쿠스, 심지어 아리스토파네스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현대의 의견 개진과 소통의 장이 확장되는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큰) 하나를 받으면 (상대적으로는 작은)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일종의 역사 진보에 따른 대가 지불로 보자는 제안으로, 마체오 편집자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랩니다.

바우만 교수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또래이며 마체오 편집자는 조국 교수 등과 세대가 같습니다. 이분들 사이에도 이미 세대 차가 크게 나며 바우만 교수가 워낙 장수한 분일 뿐 사실은 타계 1년 전까지 이런 지적 활동에 참여가 가능할 만큼 젊은 사고를 유지했다는 자체가 벌써 기적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책 제목은 "문학(literature) 예찬"이지만 널리 "인문 예찬"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두 지성은 이미 전통적 한계를 저만큼 뛰어넘는 21세기 대중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저만큼 먼 곳으로부터 관조하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