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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 열림원 세계문학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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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4. 12.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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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과연 어디에 놓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똑똑한 이들이 아무리 궁리해도 쉽게 도출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의 표준이 행여 정해지려는 순간,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의 실질적, 혹은 감정적 이해관계를 지키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나의 범주에 드는 사람으로 쳐 주거나, 반대로 배제시키려 들 때, 우리의 감정은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격동합니다. 그 순간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누구를 바라보고 살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지키려 살아갈지 날카롭게 건져낼 수도 있고, 종전처럼 타성에 젖어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느낌을 일단 거친 이상,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내가 어제와 결코 같지 않으며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시리게, 혹은 통쾌해하며 자각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입니다. 그녀의 풀네임이 p11에 처음 나오고, 이후 계속, 예외 없이 미스 어밀리어로 불립니다. 에번스라는 성씨가 생략되는 것도, 고집스럽게 "미스"라는 호칭이 소설 내내 이름 앞에 붙는 이유도 독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故) 장영희 교수께서 일종의 해석처럼 개성적으로 취한 태도가 아니라, 카슨 매컬러스의 영어 원문부터가 그렇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크게 차이나지만 여튼 크게 보아 남부의 유한 계급 출신, 독립 성향이 강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미스 어밀리어는 스칼렛 오하라와도 닮은 면이 있습니다. 괴퍅한 성격에 기이한 외모를 갖고 자신만의 고립된 영역을 일생을 통해 지키며 살아가는 그녀는 사실 일종의 부적응자(misfit)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비롯해 무릇 포유동물이란 어려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감성이 불구가 되지 않고 현실에서 남들과 잘 어울리며, 무엇보다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소설 중반부에 나오듯 마빈 메이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방치되듯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뛰어난 손기술이나 잘생긴 외모를 지녔어도 도대체 타인과 무난하게 융화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장점이 있을 때, 사회에서 그래도 남들에게 인정받는 한 자리를 차지할 때 이게 꽤나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긴 하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출신 성분이나 교육 환경이 그처럼이나 열악하면 사회화에 매우 큰 곤란을 겪을 수 있는데, 소설의 내러티브는 이 점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마빈을 추켜주는 느낌도 듭니다. 

고립된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마빈 같은 알파메일은 설령 그 신분이 사회적 약자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엄청난 강자로 다가올 수 있었겠고 그처럼이나 많은 마을 여성들이 명예를 더럽힌 것도 이런 심리적 배경이 작용했겠습니다. 헌데 가장 고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미스 어밀리어가 단호하게, 마빈의 취약한 사회적 신분을 냉혹하게 직시하며 전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세팅된 점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오히려 미스 어밀리어가 첫눈에 마빈한테 반하고, 마치 코니 채털리라든가 어우동처럼, 비천한 이성(남성)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거나, 캐서린 언쇼나 블랑슈 뒤부아처럼 대책없이 불한당 타입에게 끌려다닌다든가 해야 할 텐데, 소설에서 둘의 관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그랬다고 설명됩니다). 마빈이 야생의 알파메일 본성대로 미스 어밀리어를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갑질을 당하고(사회적 신분 차이를 감안하면 당연하지만), 얼토당토않게도 내면에서 피어난 찐사랑의 부작용(?)으로 인격마저 순치되니 말입니다.

이 미스 어밀리어는 출신 계급의 영향과는 달리 속물적인 데가 전혀 없는 개성입니다. 인간말종 마빈을 마침내 교화하고 말았다는 스토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수되는 롤플레잉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여, 마빈의 황량한 내면에 대해 한없는 경멸감을 확인한 후 거리낌없이 이를 표출합니다. 남 시선을 봐서라도, 비천한 하층민을 길들이고야 만 마나님 역할을 관객 앞에서 멋들어지게 해 내고픈 욕구가 일 만도 했건만 말입니다. 대신, 육체적으로 불구(여성치고 장신인 자신과 너무도 대비되는 면)이며 먼 친척이기까지 한 꼽추 라이먼 윌리스와 사랑에 빠지는데, 태어날 때부터 미스핏이었던 자신의 정체성(그것이 운명이었건 아니면 오기로 더 키운 면이었건 간에)에 끝까지 충실하여 한세상 살아낸 미스 어밀리어의 기막힌 고집에 우리 독자들은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