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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 마윤제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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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을읽고싶은소년 2023. 1. 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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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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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윤제 작가님의 단편집입니다. 여러 작가들의 청소년 스포츠물 앤솔로지 격인 <달고나, 예리!>에 수록되기도 했던 "라이프가드"가 표제작입니다. <달고나, 예리!> 전체에 대한 제 리뷰는 재작년 10월경에 올렸더랬습니다.

라이프가드는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주로 관광객)의 안전을 지켜 주는 직분입니다. 대체로 수영에 능한 이들이 이 직을 맡지만 주인공 유지의 경우 뭔가 다른 배경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p73의 "마음 속 욕망이 오물처럼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 구절이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유지 마음 속에 뭔가 억눌린 이런저런 감정의 찌꺼기가 머물러 있던 줄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유지에게 "욕망"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시기와 질투의 마음?(p72). p75의 "답답한 게 싹 없어져."라는 말과 어쨌든 연결을 시켜야 하겠지만. p65의 "세탁기가 비명을 지르며 더러운 구정물을 울컥울컥 쏟아냈다."라는 말과, p67의 "(묵은 살림을 깔끔하게 치워 내는) 엄마는 미다스의 손이었다."도 같이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강(江)>에서 "나"는 새엄마한테 뭔가 나쁜 의도나 있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모함하지만 사실 악의는 그렇게 말하는 본인의 마음 속에 잔뜩 똬리를 튼 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의 아토피가 그처럼 갑자기 나은 것도, 마을 아낙네(술집 여자에게 특별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 만한)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여인의 행동 안에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불순한 시늉이 아닌 진정성이 다분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정말 나쁜 사람은 역(逆)부전자전이라고, 후처의 전남편 소생을 끝까지 호적에 올려 주지 않은 그 부친이 아닐지. "검은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오물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p28)", "나는 아가미에서 오물 덩어리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검은 물고기를...(p10)" 아비와 자식이 달랐다면, 그래도 아들은 제 내면에 적체된 못된 심뽀를 "오물"로 감지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고나 할지.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서로 위치가 반대지만 마음의 오물을 민감하게("울컥울컥") 의식하는 점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다시 <라이프가드>로 돌아와, 유지 엄마는, 책 맨앞에 실린 <강>에서 "나"의 새엄마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닐지. <강>의 새엄마는 과거가 얼룩진 여인이었으나 마치 속죄라도 하려는 듯 새 가정, 새 공동체에 과할 만큼 적응하려 노력하다가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떴다면, 이 유지 엄마는 정반대입니다. 돈 많은 남자만 골라 로맨스 스캠을 벌여 한탕 한 후 다음 먹잇감을 찾아 떠나는 하이에나가 아닐지. p83에는 하우스에서 화투짝을 들여다볼 때 가장 활기가 도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의 표지 그림은 p83 "고양이처럼 살이 오른 엄마"에 대한 일러스트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사기를 친 후 혹은 직전에 짓는, 가늘게 눈을 뜬 회심의 미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고양이보다는 돼지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유지 역시 새로 생긴 동생에 대해 적정한 거리를 언제나 유지하려 애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필이면 필요한 그 기술을 안 가르친 건, 한 달여 간 어디서 뭘 처리하고 왔는지 종적이 수상쩍은 제 엄마처럼 누군가를 적정 시점에 처리하는 고난도 부작위 기술인지도 모릅니다.

<토성의 고리>를 쓴 독일 작가 W G 제발트에 대해 인구 백만이 넘게 사는 이 도시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p41)이라고 <도서관의 유령들>의 1인칭 화자는 추측합니다만 이분 말씀에 저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우선 제발트는 꽤 알려진 작가이며, 도서관처럼 특별한 성향과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드는 장소에서라면 더군다나 제발트는 자신의 독자를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한 이가 나 말고 또 있었나?" 그럼요. 의외로 당신은 그리 유니크하지 않습니다. 필립 로스의 <아메리칸 패스터>는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주인공이 아마 반납한 도서도 무슨 유령처럼 떠돈 게 아니라 걔를 알아본 어느 독자(들)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졌을 수 있습니다.

토성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고리를 차고 정해진 궤도를 돌았으나 <토성의 고리>라는 제목을 단 책(의 한 카피), 또 그에 감정이입한 1인칭 화자는 오랜 동안 소속이 없이 겉도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사회 생활은 경악할 만한 배신과 뜻밖의 도움을 번갈아 겪는 등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첫사랑도 쉽지 않았고 애욕의 감정을 에리히 프롬의 (한물간, 또 잘 맞지도 않았던) 처방에 애써 기대어 달래야 했을 만큼 힘든 추스림의 시간을 거친 듯합니다. 키르케고르(당시 표기법으로 "키에르케고르")나 안병욱 교수나 그의 목마름을 결코 달래줄 수 없었을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고마운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